▶ 민주당법안 본회의 통과…원안 대폭 수정해 법원에 폭넓은 재량권
▶ ‘무작위 배당’ 여부가 관건…전담재판부 2∼3개 두고 배당 가능성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이 23일(이하 한국시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내년 초 진행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될지 관심이 모인다.
서울고법 판사회의가 만든 기준이 무작위성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꼽히는 가운데, 윤 전 대통령 측은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예고해 오히려 재판이 지연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내란·외환·반란 범죄 등의 형사절차에 관한 특례법안'(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은 기존 법안에서 문제로 지적된 위헌성을 상당 부분 덜어내고 실제 2심 재판을 담당할 서울고법에 상당한 재량권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고법 판사회의가 전담재판부 구성 기준을 마련하고 사무분담위원회 그 기준에 따라 사무를 분담하면 판사회의 의결을 거쳐 법원장이 전담재판부 판사를 보임한다.
대법원이 자체 마련한 예규안이 우선 배당을 실시하고 내란 사건을 배당받은 재판부를 사후에 전담재판부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무작위 배당 원칙을 확보한 것과 달리,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민주당 법안은 그 기준에 관해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사실상 판사회의에 일임했다.
관건은 배당의 무작위성이 얼마나 확보될지다. 사건 배당의 무작위성이 재판 독립성과 공정성의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서울고법 판사회의가 기존 부패 또는 선거 전담 재판부처럼 2∼3개 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정해두고 이중 윤 전 대통령 사건을 전산 배당할 경우 어느 정도 무작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서울고법에 올라오는 주요 부패 사건이 부패 전담부인 형사 1·3·6·13부 가운데 무작위 배당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무작위성을 최대치로 확보하기 위해 사실상 대법원 예규처럼 기준을 마련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법안이 판사회의에 폭넓은 재량권을 준 만큼 전체 재판부 가운데 무작위 배당을 실시하고, 배당받은 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사후적으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냐는 해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판사는 "사무분담에는 특정 판사를 '꽂아서' 배치하는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재판부 진용만 짜두고 랜덤하게(무작위로) 돌리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내란·외환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를 구성하도록 한 법안의 취지와는 사실상 어긋날 소지가 있어 이런 방식으로 기준을 마련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기존 민주당안과 같이 판사회의가 사무분담위원회에서 사실상 특정 판사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운용될 가능성도 있지만 이런 방식에 대해 사법부 내부에서 계속 위헌성을 지적해왔고, 민주당이 이를 반영해 법안을 수정한 만큼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이 많다.
법안이 법원에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한 만큼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구성할지는 결국 서울고법 판사회의 결정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은 전날 판사회의를 열어 우선 내년 사무분담에서 2개 이상의 형사재판부를 늘리기로 결의했다.
이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이 통과됨에 따라 이르면 내달 중 전담재판부 수와 구성을 논의할 판사회의가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해당 법안의 입법 절차가 완료됨에 따라 앞서 대법원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내란 내란·외환 전담재판부 예규안도 일정 부분 손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는 전날 예규안을 행정예고하고 내년 1월 2일까지 의견을 받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내란전담재판부법 국회 통과와 관련한 입장을 묻는 말에 "전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어서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가 현실화하면서 어떤 사건을 처음 맡게 될지도 관심이 모인다.
전담재판부법 적용 대상은 내란·외환 및 반란 범죄 사건 또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고소·고발되거나 수사 과정에서 인지돼 기소된 관련 사건이다. 전담재판부는 원칙적으로 1심부터 설치되지만, 법 시행 당시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해당 재판부가 계속 심리한다는 내용의 부칙을 뒀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은 내년 2월 1심 선고가 예상돼 2심은 내란전담재판부 적용 대상이 된다.
윤 전 대통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체포방해 사건은 내란 본류 사건보다 앞서 1월 16일 선고를 앞두고 있어 '관련 사건'으로 먼저 전담재판부에 배당될 수도 있다.
법률안이 최종 수정을 거치면서 위헌성을 일정 수준 덜어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사실상 12·3 비상계엄 사건만을 대상으로 하는 '사후 재판부 구성'이란 점은 변하지 않아 평등권 침해 소지가 있단 지적도 법조계 일각에선 제기된다.
정치권이 대법원 예규를 제쳐두고 별도 법안을 만들면서 윤 전 대통령 측이 내란재판부 설치법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할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지적도 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는 경우 법원이 직권 또는 당사자 신청에 따라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는 제도다. 재판부가 피고인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제청할 경우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재판은 정지되고, 그만큼 재판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당장 윤 전 대통령 측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이날 추가 구속 여부를 가리는 법원 심문을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내란 사건을 특별히 전담해서 심판해 특별법원에 해당하는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하는 등 입법 독재의 헌법파괴 행위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사후적으로 사건을 특정해서 전담재판부를 만든다면 판사회의와 사무분담위원회가 판사를 배치한다고 해도, 아무리 눈속임해도 '사건 맞춤형 법관 배정'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내란전담재판부법은 독재국가를 향한 '나치 법안'이다. 이재명 정부는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라"면서 "변호인단은 이후 중대 결심을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중대 결심이 변호인단 전체 사임을 통한 재판 지연 시도를 의미하는 거냐'는 질문에는 "지금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