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장 르포 - 이민단속 직격탄 다운타운 자바시장] 한인 업주·직원들 ‘공황상태’… 문 닫은 업체들 급증

2025-06-10 (화) 12:00:00 황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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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CE 다음 급습 준비’ 소문
▶ “언제 닥칠지 몰라” 뒤숭숭

▶ “정상영업 어렵다” 하소연
▶ “자바업계 전체 생존 위협”

[현장 르포 - 이민단속 직격탄 다운타운 자바시장] 한인 업주·직원들 ‘공황상태’… 문 닫은 업체들 급증

대대적 이민 단속의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LA 다운타운 자바시장 의류업소 밀집 지역이 9일 인파가 뚝 끊긴 채 적막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박상혁 기자]

연방 이민단속국(ICE)의 기습 단속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9일 월요일 오전, 주말 장사를 마친 소매업주들과 바이어들의 발길로 가장 활기를 띠어야 할 LA 다운타운 패션 디스트릭트, 이른바 ‘자바’는 이례적일 만큼 적막했다. 평소 같으면 찾을 엄두도 못 냈을 스트릿 파킹은 텅텅 비어 있었고, 주차장에서 깃발을 흔들며 손님을 끌던 직원들마저 자취를 감췄다.

거리 곳곳에는 셔터를 내린 채 영업을 멈춘 매장들이 눈에 띄게 많았고, 점심시간 전후로 줄을 서야 겨우 음식을 살 수 있었던 푸드 트럭 주인은 차 안에서 고개를 내밀고, 순식간에 사라진 손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도 직원도 찾아보기 힘든 한산한 자바 거리엔 흉흉한 소문만이 무겁게 떠돌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단속 기조가 계속되면서, LA 다운타운 패션 디스트릭트 한인 업계가 극심한 불안과 침체에 빠졌다. 반복되는 실제 단속으로 업주와 종업원 모두 심리적 공황 상태에 가까운 긴장을 겪고 있으며, 이어지는 시위와 군 병력 투입 등 불안한 상황이 겹쳐 정상적인 영업조차 어려워진 실정이다.


한인 업주들 사이에서는 “ICE가 규모가 큰 업소들을 중심으로 다음 단속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퍼지며 불안감이 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복수의 목격자들에 따르면 9일 오전, 4~5명의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샌패드로 홀세일 내부와 아넥스 빌딩을 정찰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목격자들은 “지난주 금요일과 같이 직접적인 체포는 없었지만, 다음 타깃을 찾는 듯 주변을 꼼꼼히 살핀 뒤 떠났다”고 입을 모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정상 영업하던 가게들 중 일부는 ICE 요원 출몰 소문이 퍼지자 곧바로 문을 닫고 장사를 접었다.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는 ICE 요원들이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였지만, 상당수 업소가 셔터를 내린 채 휴업 중이었다.

업주들은 “이런 단속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끝날지 알 수 없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H 브랜드를 운영하는 40대 업주 이모씨는 “이민 단속의 여파가 단순히 불법체류자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전체적으로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시장 전체가 얼어붙었다. 오늘만 해도 미팅이 예정된 바이어들로부터 ‘다운타운 쪽으로 가는 게 두렵다’며 이번 주 바잉을 취소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가뜩이나 어려운 불경기에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업계 전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의류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또 다른 한인 업주 김모 씨는 인력난 속에서 업주들이 겪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지난 금요일 단속 이후 ‘체류 신분이 불안정한 직원을 쓰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며 “타인의 서류를 사용하거나 신분을 숨긴 채 취업하는 경우가 많아 업주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공장이나 창고 일은 워낙 힘들어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들이 꺼려하기 때문에 인력난에 시달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고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일부러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패션 디스트릭트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봉제, 프린트, 커팅 등 하청 업체들도 단속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프린트 공장을 운영 중인 이모 씨는 “쇼룸은 밀집돼 있어 단속의 주요 타깃이 되기 쉬운 반면, 공장들은 흩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덜 불안한 것은 사실”이라며 “직원들이 출근은 했지만 하루 종일 긴장 속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팅 공장을 운영하는 허모 씨는 “직원들의 불안감도 문제지만, 자영업자 입장에선 경기가 얼어붙을 경우 우리 같은 하청업체들이 받게 될 2차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며 “지금은 단순히 불법체류자 단속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인력난과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업계 전체의 생존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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