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는 이야기] 당신 안에 있는 나

2025-04-11 (금) 07:38:41 신석환/수필가
크게 작게
사람들의 관계 속에는 호(好) 불호(不好)가 존재한다. 대개 좋아한다는 감정은 상대적이지만 의외로 나는 좋아하지만 그는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 사랑이나 미움, 의리 증오라는 특별한 감정까지도 포함해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늘 일정하지 않다.

얼마 전까지 말도 잘 섞지 않고 눈도 잘 마주치지 않던 관계였음을 아는데 어느 날 우연히 찻집에서 그들이 파안대소하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광경을 목도했을 때 조금은 당황했던 기억도 있다. 무엇이 그들을 함께 웃게 만들었을까?

오래전에 이런 글을 읽었던 적이 있다. 무대는 유럽 어느 시골이었고 그 집에서 기르는 고집 센 암소가 밭일을 가야하는데 영 나오지를 않았다. 주인이 밀고 당겨도 뭐가 비위를 상하게 했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그 집 어린 막내딸이 집안에서 그 광경을 보더니 신발을 신고 나왔다. 그리곤 암소 앞으로 가서 새끼손가락으로 코를 몇 번 만졌더니 신기하게도 소가 조용히 밖으로 나왔고 앞장선 주인을 따라 밭으로 갔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소녀와 암소 사이에 무슨 비밀스런 사인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딸은 무심한 표정으로 집 안으로 들어갔고 왜 그런지 말을 안 하니까 그냥 그러고 말았다는 에피소드다.

세상일은 꼭 설명할 수 없는 일도 많다. 특히 사람의 마음이건 암소의 마음이건, 마음에서 일어나는 파동은 짐작할 수 없는 일이 태반이다.

그런 중에서도 인간관계의 정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재미난 현상을 발견한다. A가 B를 미워한다. 공개적으로 싫어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A가 B를 싫어하는 B의 단점이나 결점들이 A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B가 대화할 때 너무 소리가 큰 것도, 남 얘기를 잘하는 것도, 음식을 너무 게걸스럽게 먹는 것도 다 A가 갖고 있는 모습들이다.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다는 놀라운 역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너무 폄하하거나 미워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 미운 모습이 내 모습인 것을 생각하고 오히려 그를 이해하고 사랑해줘야 마땅하다.

욕하고 싶으면 혼자 벽을 보고 하든지 사이좋은 부부라면 부부끼리 몇 마디하고 멈추는 게 좋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칭찬해주거나 좋아해주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만장일치라는 놈이 제일 나쁜 방식이란 말도 있으니까.

미국의 유명한 가수로 에미넘(Eminem)이 있다. 백인으로는 드물게 랩을 불러 유명한 가수가 되었고 인기와 부를 거머쥔 연예인이다. 처음 랩으로 인기가 올라갈 때 많은 백인들이 욕을 하고 싫어했다. 그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모두가 날 사랑하면 누가 날 미워하지?” 시니컬한 말이지만 의미는 작지 않다.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는 없다.


노벨상을 탔다고 밥 딜런을 다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작가 한강도 억울할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남의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어디서 들었는지 출처도 불분명한 루머나 가십을 들이대며 험담을 늘어놓는다.

서두에 얘기를 했지만 그 루머가 자신의 얘기일 수도 있다. 아니면 시샘이나 공연한 심심풀이 땅콩일 수도 있다. 아흔 아홉이 미워해도 한 사람만 나를 좋아하면 살만할 인생이란 말을 억지로라도 믿자. 이런 말도 있다. “미움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 사람 역시 당신으로부터 미움을 받으려고 작정이야 했겠는가. 호 불호의 경계는 미리 그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 사람 안에 있는 당신을 지우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 사람 속에 있는 당신, 당신 안에 있는 나, 뭔가 신비한 어떤 정서가 구르는 느낌이 있잖은가.

인간관계란 불가사의한 경우의 수가 너무나 많다. 나와 커피 한잔도 함께 마시지 않았는데, 그저 수인사 정도의 관계뿐인데 나에 대해 참으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경이롭다.

물론 대부분이 부정확하거나 오류지만. 그래서 때로는 지우개로 지워주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런 오류 속에 나 역시 빠져있다는 것이다.
누가 지우려고 하기 전에 내 마음속 오류는 내 지우개로 지우면 어떨까.

<신석환/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