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영정사진 프로젝트

2025-03-07 (금) 07:45:23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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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던 겨울 어느 날, 40여년 만에 만난 친구들이 있다. 다들 20대 중반 나이로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인 잡지사에서 수년간을 함께 일한 동료였다. 본인 외에 3명은 모두 사진기자였는데 그중 한 여기자 신화는 파킨스병을 앓은 지 5년이상으로 몸이 아픈데도 불구, 서울에 온 본인이 보고 싶다며 만남의 장소에 나왔다. 동료 남자기자가 일부러 집에까지 가서 함께 서울대 까페로 와 주었다.

신화는 진부령 취재와 거제도 출장을 함께 가서 찍은 사진을 앨범에서 찾아 셀폰에 찍어서 왔다. 우리 모두 밝고 빛나던 시절이었다. 피부가 하얗고 온화한 얼굴에 말도 얌전하게 하던 그 시절의 신화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시외버스에, 멀미가 날 정도로 흔들거리는 배를 타고 거제도를 오가는 고된 출장에도 불평 한 번, 짜증 한마디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런 몹쓸 병에 걸렸는지 우리들은 신화와 마주 앉아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마음 한쪽이 오그라들었다.
어눌한 말투로, 천천히, 그녀는 말했다. “뇌수술을 했어. 뇌에 미세전극을 삽입하여 전극의 다른 쪽 끝을 가슴 피부 아래 심는 수술을 받았어. 가슴의 도파민 작용제에 바테리를 갈아주면서 살아. 의사가 지속적인 운동으로 하루 4시간을 걸으라고 했어.”


파킨슨병은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손발이 떨리고 손동작이 느려지며 얼굴 근육도 뻣뻣해진다. 앞에 놓인 돈까스를 거의 못먹고 웅얼거리며 말하는 그녀의 말을 열심히 듣고 말하던 우리들은 갑자기 신화가 보여준 셀폰의 사진에 말을 잊었다.
“내 영정사진이야.” 흑백으로 된 무표정한 그녀 사진은 섬찟해 보였다. 대학때부터 단짝이었던 옥이 밝게 말했다.

“이 사진은 아니다. 우리가 40여 년만에 이렇게 만났는데, 앞으로 죽기 전에 만나기 힘들겠지. 그러니 오늘 모두 영정사진 프로젝트 진행하자.”
그 말에 다들 화장을 고치고 칼라플한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가장 좋은 자리를 잡아 모델이 되고 사진작가가 되었다. 물론 신화도 단짝 친구 옥이가 정성을 다해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진이 마음에 안들면 “나랑 원수 되고 싶어?” 말하며 다시 촬영하는 순간마다 우리는 킥킥 웃었으나 속으로는 질금질금 눈물을 흘렸다.
“우리 친구 어쩌냐? 제발 오래 살아, 제발 더 살아주라.”

신화는 밝게 살짝 웃는 사진을 마음에 들어했고 덕분에 다들 사진 한 장씩을 건졌다. 그녀는 대화를 하는 도중에 표정이 굳어진다 말해주면 표정을 바로 잡았고 대화를 나누는 틈틈이 실내를 도는 운동을 했다. 친구들은 “우리 신화, 너무 대단해, 훌륭해.” 하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영정사진이란 그 사람의 생전의 모습을 기리기 위해 사용되는 사진으로 장례식이나 추모행사에 사용되는 사진이다. 그래서 생전의 좋은 기억을 살리고 가능한 한 고인의 밝고 건강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사진작가들이 ‘영정사진 프로젝트’라고 하여 노인회나 복지회관을 찾아 ‘증명사진(영정사진) 찍어드리기’라는 타이틀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 효도사진 찍기라고도 하는데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두면 장수한다’는 말도 있다.

어르신들은 예쁘게 단장하고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가장 곱고 예쁘게 찍어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더 아프기 전, 건강하여 혈색이나 피부가 좋을 때 잘 차려입고서 사진을 찍는 것이다.

가족들은 갑자기 일을 당하면 당황하고 경황이 없어서 평상시 고인의 잘 나온 사진이나 증명사진을 확대하다 보니 초점이 흐린 사진을 쓰기도 한다. 사진을 찍어두면 유가족이 편하기도 하지만 본인도 죽음에 대해 의연하게 생각하면서 남은 시간을 더 잘 살아가려고 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요즘 서울 젊은이 중에는 자신의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놓기도 하는데 고달픈 삶에 대한 위로와 열심히 살자는 용기를 얻고자 함이라니, 요즘 젊은이들 의식은 못따라가겠다. 60대 후반을 달려가는 우리들도 이제야 영정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말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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