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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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복(福)은 베품에서 온다”

2024-12-18 (수) 임형빈/한미충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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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한문 책자 명심보감에 이런 글이 있다. ‘유인정(留人情)이면 후래(後來)에 호상견(好相見)이니라’ 즉 ‘모든 일에 인자하고 따뜻한 정을 남겨두면 뒷날 서로 좋은 낯으로 보게 된다’는 뜻이다. 근원이 깨끗하고 후덕하면 그 인생 흐름도 깨끗하고 복을 받게 마련이다. 그 옛날 조선 9대 임금 성종 때에 있었던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성종이 민간 시찰을 나갔다. 그는 조용히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살피다 그만 날이 어두워 산중에서 길을 잃었다. 수발하던 시종무관이 “전하, 송구하오나 산길을 잘못 든 듯싶습니다.

저쪽 산골짜기의 한가운데 집 한 채가 보이는데 우선 저곳에서 하루 묵어갈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성종은 이리저리 헤매던 길에 날도 저문데다 급기야 배까지 고파왔다. “이보시오 주인장 하룻밤 묵어갈 수 없겠소? 길가는 나그네인데 그만 길을 잃어버렸소” “죄송하지만 보시다시피 방이 한 칸밖에 없습니다.


누추하지만, 이런 곳에서 쉬실 수 있는지요?” 잠행을 수행하던 종무관이 급히 성종에게 달려와 귓가에 대고 말씀드렸다. “오늘 여기서 지내시면 될 듯합니다”
성종이 집 앞에 다다르자 젊은 사내가 부엌에서 메밀 죽을 쑤고 있었다. 성종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 거보시오, 메밀 죽 한 그릇만 먹을 수 있겠소!

그러자 사내가 대답했다. “예 당연히 대접해 드려야지요” 그러더니 김이 무럭무럭 나는 메밀죽 한 사발을 떠서 상을 내왔다. 하도 먹음직스러워 성종은 얼른 떠먹으려 하자 사내가 급히 만류했다. “나으리 시장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먼저 드릴 사람이 있어서 그렀습니다” 하면서 병석에 누운 어머니한테 메밀 죽을 올린 후 성종에게 내어 주었다.

산길을 헤메다 배가 출출하던 차에 얼마나 맛이 좋았던지 성종은 그 자리에서 죽 한 사발을 금세 다 먹어 치웠다. 세 사발을 먹고 나서야 배가 불러왔다. “거참 메밀 죽 한번 잘 먹었소, 이렇게 맛있는 메밀죽은 생전 처음이요” 배가 든든해지고 나서 보니 그동안 사내는 한 숟가락도 먹지 못하고 윗목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주인장은 왜 아무것도 안 드시오?” “배가 불러 괜찮습니다” 성종이 화장실을 가는 척하고 밖에 나와 몰래 부엌을 들여다보니 메밀 죽 끓이던 가마솥이 텅 비어 있었다. 성종은 사내의 마음가짐에 짐짓 놀라며 감탄했다. “거 참 미안 하오 내가 배가 고픈 나머지 그대의 저녁까지 빼앗아 먹었구려!” “아닙니다.

소인은 사실 메밀 죽을 쑤기 전에 허기를 채웠습니다” 성종은 다시한번 사내의 마음 씀씀이에 감복했습니다, “실례이오만 이름이 어떻게 되오?” “성은 이가이고 이름은 덕수라고 합니다” “이가면 성이 나하고 같으니 우리 의형제를 맺는 게 어떻겠소!” “나리 좋은 대로 하시지요” “그러면 내가 그대보다 나이가 많으니, 형을 하고 댁은 아우로 하면 될듯싶소 어떻소?” “예 좋습니다” 이렇게 사내와 성종은 의형제를 맺게 되었다.

다음날 성종이 그 집을 떠나면서 사내에게 말했다. “덕수! 내, 이 은혜는 꼭 갚을 걸세” “예 형님 무슨 은혜 랄 게 있나요! 지나다 배고프시면 언제든 들르시구려”
그런 후 며칠이 지나자 덕수의 어머니 병세가 더욱 깊어졌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읍내에 한약방을 찾았다.

그러나 약재가 값이 너무 비싸서 구입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빨간 옷을 입은 지체 높은 양반이 덕수의 집을 찾아온 것이다. “이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밖에서 소리가 들리자 덕수는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하인 몇을 데리고 서 있는 것이었다.

“뉘신데 저를 찾으십니까?” “그래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예 덕수라고 하옵니다만 뉘신데 이런 누추한 곳까지 저를 찾아오셨는지요?” “내가 집을 맞게 찾아왔구나. 나는 이 나라 어의니라” 어의라는 말에 덕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임금님께서 보내셨느니라 메밀 죽 얻어먹은 형님이라고 말하면 알아들을 것이라 하였느니라” 그제야 덕수는 메밀 죽 형님이 임금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의의 치료를 받은 어머니는 병세가 완전히 좋아졌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장작을 패던 덕수앞에 용포를 입을 성종이 떡하니 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우 있는가!”“아이구 형님!” “아니 전하 성은이 망극 하옵니다” 덕수는 성종으로부터 후한 상을 내려받아 평생 넉넉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평소 덕수의 심성이 후덕했던 결과로써 이글을 통하여 우리의 삶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임형빈/한미충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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