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아버님의 우정(友情)

2024-12-04 (수) 07:54:11 안정수/용커스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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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있어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감사의 계절에 돌아가신 아버님 친구분들과의 우정이 떠오른다.

해외에서 직장생활을 오래 하시면서 맺었던 상사분과의 만남으로 인해 먼저 이민길에 오르셨다. 텍사스에 계시는 상사분을 만나기위해 홀로 차량운전으로 긴 여정을 나섰다가 미네소타 세인트폴에 계시는 오랫동안 한국에서부터 사귐을 이어오시던 친구분을 방문하셨다.

늦은 봄이었다. 1만개의 호수가 산재해 있는 중서부의 도시, 너무나도 아름답고 좋아서 가는 길을 포기하시고 그곳에 정착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리고 우리 가족도 초청하셨다. 거처할 곳을 구하시느라 노력하였으나 짧은 이민시간으로 크레딧이 충분치 않아 은행융자를 받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차 친구분인 한 선생님께서 내가 조금 큰 집으로 옮기려고 하니 내집을 사시는 것이 어떠하냐고 하셨단다. 아주 휼륭한 지역에 있는 아름다운 주택이었다. 30년 기한으로 개인융자를 해주셨다. 틈만나면 낯선 이민생활의 어려움에대해 조언해주시며 격려해주셨다.

삼촌이라 생각하고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달라고 하셨다. 아버님보다 7-8년 연하셨지만 아버님께서 서울에 계실적부터 존경하시며 가깝게 지내던 분이시다. 우리가족 모두 미네소타공항에 도착했을때도 직접 오셔서 환영해주셨다.

한 선생님 도움으로 우리가족은 이민 첫날부터 개인주택에서 시작할수 있었다. 저의 아내가 버스타고 출퇴근하며 작장에 다닐때였다. 다른 식구들 모두 근무하는 시간이어서 라이드를 해줄 상황이 아니었다.

악명 높은 미네소타의 눈폭풍, 살을 에는 겨울추위, 퇴근시간 무렵에 직장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단다. 아직도 나의 아내가 그때의 고마움에 눈시울을 적신다.

한 선생남께서 아버님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다. 뉴욕에 있었던 관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방문시 아버님과 함께 한 선생님이 계신 묘지로 가는 도중 말씀하시기를 한선생께서 돌아가시면서 유언으로 이런 말을 남기셨단다. 안형께서 거의 15년동안 모기지페이먼트 갚느라고 수고하셨다. 이제 남은 기간은 안주셔도 된다고...

아버님보다 먼저 오셔서 정착하셨지만 우리와 다름없는 이민생활이었을텐데 너무나도 고맙고 놀라운 소식이었다. 평소 그렇게 주위사람들을 도와주시기를 내 일같이 하시더니 결국엔 마지막 가시는 시간까지 친구의 진한 우정을 실천하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를 생각하셔서 일부러 새 거처로 옮기신거 같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러나 더욱 고마운것은 이런 결정이 있기까지 사모님과 가족들의 도움없이는 가능치 않은 일인데 어려운 동의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사모님 역시 그 분야에선 성암만 대면 아실 한국입양아들의 대모로 많은 입양아들의 미국정착을 위해 밤낮으로 수고하셔서 잘 자랄수있도록 하였고 또한 미네소타한인회 회장으로 수고하셨다.

부자간에, 형제간에, 친구간에 금전문제로 소송과 눈살을 찌푸리는 일들의 소식을 접할때마다 안타까울 뿐이다. 자녀들 모두 건강하게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잘 키우시고 또한 훌륭한 친구분들을 두신 이버님이 자랑스럽다.

과연 네게도 어려울때 도움받을수 있는 아니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수있는 진정한 친구가 있을까? 생각하며 좋은곳으로 먼저가신 아버님, 한 선생님, 사모님 돌아가셨어도 세분 가까이에 함께 계셔서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니 또한 막역한 친구덕분에 뉴욕에 잘 정착하고 지낼수있게 된것에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안정수/용커스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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