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허세의 위험’

2024-08-19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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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정문 쪽으로 새카만 벤츠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호텔 종업원이 서둘러 달려가 차 문을 열어주면 중년의 신사가 점잔을 빼며 내린다. 그 옆을 지나던 사람들이 그를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는데, 그는 이를 못 본 척하고 로비로 걸어 들어간다. 바로 그 맛이 없다면 누가 구태여 그 비싼 돈을 주고 외제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겠는가?

낮은 금리는 과소비를 촉진한다. 금리가 낮으면 신용 대출은 쉬워져서 벤츠와 같은 고급 승용차 구매가 급증한다. 이때 낮은 금리와 관대한 신용은 선이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된다. 증가된 신용이 혁신을 촉구하는 투자가 되지 못하고 순간의 쾌락을 즐기는 허세 소비를 촉진할 때, 그 돈은 개인과 나라를 망치는 치병적인 양날의 검이다. (이준구의 ‘열린경제학’ 중에서)

팡세의 서두에서 블레즈 파스칼은 이렇게 썼다. “인간의 본능 안에는 공명심과 허영심이 깊이 각인되어 있어서 자기 과시를 위해 허세를 추구한다.” 경제학자 베블렌(T. Veblen)도 비슷한 말을 했다. “허영심이 있는 사람들은 과시적인 소비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경향이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은 바위 같이 단단한 내면의 믿음과 거품 같은 허세의 싸움이었다. 다윗은 힘으로 골리앗을 넘어뜨리지 않았다. 축적된 믿음으로 넘어뜨렸다. 좌우에 힘센 경비병을 거느리고 최신 무기로 완전무장한 거대한 골리앗은 허세와 오만 때문에 패했다. 골리앗은 다윗을 업신여기며 말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들을 가지고 내게 나왔느냐.’


골리앗은 다윗이 여러 개의 막대기들을 손에 들고 나오는 것으로 잘못 보았다. 착시 현상이다. 골리앗은 심한 비대증으로 야기된 시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장한 경비병의 호위를 받아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골리앗은 오래된 비만이나 심혈관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골리앗은 영혼육 전체가 실력 없는 허세의 사람이었다.

TV나 신문에 가끔 나오는 북한 군인을 보라. 영관급만 되어도 앞가슴 전체를 가리는 훈장을 포도덩굴처럼 무겁게 매단다. 변변하게 내세울 것이 없으니까 화려한 황금색 훈장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겉치장 한다.

진정한 실력자는 자신을 드러내어 광고하지 않는다. 아이비리그 대학이 TV나 신문에 광고 내는 걸 본 적이 없다. 시베리아 호랑이를 보라. 그 기척은 언제나 베일에 싸여있고 실력 행사는 늘 절제되어 있다. 철저히 자신의 위엄을 감추고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수도사처럼 내부 축적의 삶을 산다. 그러다가 호랑이가 한 번 표호하면 모든 짐승이 두려워 떤다.

허세의 뿌리는 열등감이다. 허세는 자신의 존재를 과도하게 인정받고 보상받으려는 욕망에 깊숙이 뻗어 있다. 허세의 열등감이 작용하는 동안에는 누구든지 창의적 도약은 어렵다. 저명한 평론가 존 래너드는 말했다. “냉정한 원고마감 시간은 나의 척추(脊椎)이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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