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대통령의 말’

2024-07-31 (수) 채수호 자유기고가
크게 작게
지난 6월27일 실시된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도날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간의 첫번째 TV 토론은 트럼프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이민정책과 외교, 안보, 경제 등 전방위로 공격을 퍼붓는 트럼프에게 바이든은 멍한 눈으로 입을 반쯤 벌린채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듯 쩔쩔매는가 하면 주제에서 빗나간 엉뚱한 답변을 하기도 했다. 거짓말도 서슴치않으며 맹공을 퍼부어대는 트럼프에게 81세의 바이든은 코너에 몰린 지친 권투선수처럼 무방비 상태로 얻어맞고만 있어 안쓰럽기까지 했다.

대통령의 말은 수천, 수억의 사람들을 지배하는 힘이 있다. 더우기 세계의 대통령이나 마찬가지인 미국대통령의 말은 그 힘과 영향력의 막강함이 비할 데가 없다. 그야말로 세계를 쥐락 펴락,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것이 대통령의 말인 것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젊은이들은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야 하고 그의 말 한마디에 총성이 멎고 평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핵폭탄 투하를 명령할 수 있는 핵단추도 그만이 누를 수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전세계 주식시장이 요동을 치기도 하고 교육과 의료정책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는 죄를 지은 사람을 감옥에서 풀려나게 할 수도 있고 수백만 서류미비자들에게 사면을 내릴 수도 있다.


이렇게 막강한 것이 미국 대통령 자리인데 기억력이 없고 정신이 흐려져서 사리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말도 못한다면 어떻게 그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겠는가.
첫번째 TV 토론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트럼프는 지난 7월13일 펜실바니아주 유세 도중 20세의 청년에게서 총격을 당하였다. 유세장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날아온 총알은 트럼프의 오른쪽 귀를 스쳤다. 귀 부상을 입고 일어선 트럼프는 성조기를 배경으로 얼굴에 피를 흘리며 불끈 쥔 주먹을 들어올리고 파이팅을 외쳤다.
이 장면은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미국인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암살미수 사건이 트럼프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총격사건 이후 트럼프 대세론은 콘크리트처럼 굳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변은 민주당에서도 일어났다. TV 토론을 지켜본 민주당의 여러 원로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바이든의 인지능력에 우려를 표하며 후보직 사퇴를 건의했다. 바이든은 사퇴할 뜻이 없음을 거듭 밝혔으나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과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나서서 설득하자 결국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고 후보직에서 내려왔다. 50여년을 국가를 위해 헌신한 노 정치인의 아름다운 퇴장이었다.

캘리포니아 검찰총장과 주 상원의원을 지낸 해리스는 59세로 트럼프보다 19세나 젊다. 바이든의 나이와 인지능력을 문제삼던 트럼프가 이번에는 해리스로부터 역공을 당하게 생겼다. 또한 인도계 어머니와 자마이카 출신 흑인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인종적 배경도 아시안과 흑인들의 표심을 잡기에 유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는 여성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낙태권을 옹호하는 해리스의 정책은 여성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대선은 검찰총장 출신 후보와 확정 판결을 받은 중범죄자 후보 간의 대결구도처럼 되어 묘하게도 한국의 정치상황과 흡사하다. 트럼프에게 오차범위 밖으로 크게 밀리던 민주당의 지지율도 해리스 후보 등장 이후 많이 좁혀지고 있다. 오는 11월 미국의 대선은 그 어느때보다도 치열한 박빙의 대결이 될 것 같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