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상처가 아물면 보석이 된다’

2024-06-24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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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가는 페인트다. 1,350도의 높은 온도로 구워 낸 고려청자나 이조백자의 비색은 천 년이 간다. 하지만 옻칠의 수명은 이천년 이상이다. 옻칠의 원료가 되는 옻 수액은 심은 지 7년이 지난 초여름에 옻나무에 깊은 상처를 내어 채취한다.

채취자가 옻나무의 뿌리에서 약 30센티미터 위쪽부분에 날카로운 칼로 굵어 깊은 상처를 내면, 옻나무는 하얀 수액을 만들어 아픈 상처를 겹겹이 감싼다. 이때 나무 표피 밖으로 흘러나온 수액을 받아낸 것이 바로 옻 수액이다. (전용복의 ‘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예술가’ 중에서)

뿌리 가까운 곳에 깊은 상처를 입은 옻나무의 고통은 극기(克己)하기 어렵다. 옻나무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전신을 몸부림치며 옻 수액을 분출한다. 역설적이지만 인생의 고귀한 축복도 아픈 상처를 통해서 임한다. 야곱은 한때 실패하고 깊은 좌절의 늪에 빠졌다. 생존의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이때 야곱은 얍복강 기슭에 엎드렸다. 하나님과 가슴 심연으로부터 독대했다.


긴 밤이 지나 새벽이 되었을 무렵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겸손과 낮아짐을 보았다. 하나님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야곱의 환도의 중심을 쳤다.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야곱은 다리를 절었다. 그 상처의 아픔이 솟아날 때 마다 인고(忍苦)의 아픔을 감싸기 위해 야곱은 수액을 만들었다. 야곱의 수액은 생명을 건 기도였다. 내면의 상처를 감싸는 야곱의 기도는 너무 간절해서 밤새도록 얍복강 기슭을 메아리 쳤다.

아침 여명이 밝자 상처와 간구의 기도가 있던 야곱의 가슴 속에 보석 같이 빛나는 은혜가 임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하던 야곱은 은혜를 의지하여 찬란하게 도약했고 12지파의 조상 ‘이스라엘’이 되었다.

야곱은 비로소 자기초월을 실현했고 사람들은 야곱이 무릎 끓었던 그 자리를 브니엘이라고 불렀다. 브니엘은 좌절했던 야곱에게 보석 같은 초현실적 축복이다. 하지만 모든 상처가 저절로 보석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존재’와 ’내가 되어야 할 미래의 존재‘가 서로 뒤섞이면 브니엘의 보석은 탄생하지 않는다.

이 혼란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다. 내가 앞으로 실현해야 할 거룩한 목표가 현재 나보다 저만큼 앞에서 전진하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지금 현재와 미래사이의 확실한 보폭과 공간은 귀중하다. 그 거룩한 공간에서 인간은 긴장하고 낮아지고 기도하고 결단하고 하나님을 애타게 찾는다.

놀랍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광야에서 고통 중에 있을때 저 멀리 앞에서 인도하는 구름기둥 때문에 구원받았다. 같은 원리로 야곱은 절망 중 얍복강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다가 '자신 앞에서 부르는 하나님을 만났고 새 삶을 시작했다. 이 경우에 모두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거룩한 공간이 존재했다.

빅톨 플랑클(Viktor Frankl)은 말했다. “외부의 어떤 자극과 우리의 반응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서 숭고한 반응을 선택할 자유와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 인간의 삶이 한 번 쯤 자기 초월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진실한 인간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당신의 상처가 보석이 되게 하라.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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