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특별기고] 실패한 통일 정책, 무엇이 근본문제인가?

2024-05-24 (금) 나필열/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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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할 최대의 민족적 과제로 남아 있다. 독일이 동서로 갈라지고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진 것은 모두 제2차대전 후에 벌어진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의 소산이었다.

그런데, 히틀러의 나치정권하에서 전범국이었던 독일은 이미 30여년 전에 재통일을 이룩하여 유럽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됐는데, 무죄한 우리 민족은 분단의 족쇄를 아직도 벗지 못하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라의 허리가 부러지고 민족이 분열되여 있는 한 우리 배달민족의 미래는 밝을 수 없으며 민족의 진정한 해방과 자유는 없다.

분단의 멍에가 우리민족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 민족적 자아실현의 필수 요건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통일을 성취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한반도의 현실은 참담하다. 분단의 끝은 보이지 않고 통일의 전망은 서 있지 않으며 북핵과 더불어 긴장과 불안정만 고조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우리 민족은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 민족의 미래 종착지는 과연 어디인가?


6.25는 실패한 통일전쟁이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한반도 통일문제가 우리민족 내부의 문제인 동시에 열강의 중요한 지정학적 이해가 얽힌 복잡한 국제정치의 문제임을 말해준다.

북한은 중국의 안보를 위한 중요한 완충지의 역할을 하며 남한은 미국의 동북 아시아에 있어서의 최전방 전략적 요충지다.
따라서 중국과 미국의 입장에서 판단할 때 한반도의 분단을 유지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국제적 세력균형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한반도 통일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세계정치를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의 일방적 통일을 받아드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무력통일이던 독일식의 평화적 흡수통일이던, 그것이 일방적 통일이라면 미국과 중국, 두 열강 중에 하나는 지정학상 받아들일 수 없는 큰 손실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러므로 한반도의 통일은 현재의 미, 중 사이의 세력균형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만 실현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동북아시아에서의 세력균형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한반도가 통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통일 한반도가 스위스 같은 영세중립국으로 변신 하는 길 뿐이다.

즉 한반도에 ‘아시아의 스위스’를 창조하는 길, 그 길만이 세력균형과 한반도 통일을 조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로서 우리 배달민족이 지향해야 할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
국제법상 영세중립국은 특별한 의무와 동시에 특별한 권리를 갖는다.

가장 중요한 점은 영세중립국이 군대는 보유할 수 있으나 어느 나라와도 군사적 동맹이나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반면, 전쟁 당사국은 영세중립국의 영토, 영해, 영공을 침범하거나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영세중립화를 통하여 동북 아시아에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다면, 열강간의 세력균형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으며, 그것이 지역적 안정과 평화 그리고 나아가 지역 경제의 번영에 크게 공헌한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이것이 중국과 더불어 일본, 러시아가 한반도의 영세중립화를 크게 환영할 것으로 보이는 주 이유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다르다. 한반도가 통일되어 영세중립국으로 변한다면 미국으로서는 아시아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를 잃는다. 미국은 남한에서 군대를 철수시켜야 하며 한국과의 군사동맹 관계도 끊어야 한다. 따라서 중국을 향한 미국의 군사적 압력과 위협은 그 만큼 감소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이제 새로운 한반도정책을 수립하여 지난 오랜 세월 동안의 인위적 한반도의 분단과 민족의 분열에서 유래하는 수많은 비극적 사태를 영원히 청산하고, 국제정치의 희생양이 된 무죄한 우리 민족의 한을 풀어주며,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안정적 질서를 창조하기 위한 획기적 정책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 했다고 믿는다.

미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사실 간단하다. 동북아시아의 4대 열강 즉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 사이의 조약을 통하여 한반도의 영세중립을 보장하면 된다.
미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그러한 획기적 정책변화를 추구할 것을 기대 할 수는 없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책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우리 민족은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특히 재미동포의 중요한 역할이 기대된다.

우리 재미 동포는 뜻과 힘을 합하여 미국정부를 설득하기 위한 작전을 짜고 최선의 노력을 다 할 민족적 의무를 지고 있다.
그것이 우리민족의 밝은 미래창조를 위한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나필열/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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