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학벌공화국의 일그러진 수능만점자

2024-05-15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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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어려운 사건이 한국에서 발생해 미국의 한인사회에서까지 큰 충격이 전해졌다. 연세대 의예과에 재학중인 남학생이 교제하던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유는 이별을 통보한 게 원인이 되었다는데, 이 남성은 과거 대학입학 수능시험에서 만점자였다고 한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 한국의 유튜브와 인터넷에는 전 국민이 남성의 신상을 터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데 대한 충격과 놀라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남성 정도면 엘리트중에 엘리트 아닌가. 그렇다보니 혹 과잉된 자아로 “내가 누군데 감히...” 하며 그런 짓을 저지른 게 아니었을까.

한국사회에서 의대증원이라는 이슈로 온 나라가 시끌거리는 이 때, 이 사건으로 한국의 의사들은 추한 이미지가 덧씌워져버렸다. 한 시대의 엘리트주의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다.


공부만 잘 하면... 돈만 잘 벌면 괜찮다는 논리가 지금의 한국을 타락시켰을지도 모른다. 평생 칭찬만 듣고 거절을 당해본 적이 없는 미숙한 인간이 자신보다 못나 보이는 여자친구에게 거부당하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그처럼 끔찍한 사건을 벌인 것일까. 그의 부모는 수능만점에 의대생인 자식 잘 키웠다고 얼마나 착각하고 살았을까.

공부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인성을 먼저 만들어야 성공하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이다. 때문에 미국은 명문대 입학에 인성을 검증할 다양한 과외활동과 리더십의 증거가 없으면 원서도 못내민다. 공부가 인성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협동심을 중시하는 팀 스포츠를 학창시절에 엄청나게 강조한다. 한국도 명문대 신입생 선발시 협동심을 검증할 인성도 좀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재판부는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의 목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약한 처벌을 주는 것은 아닐까. 어떤 이유로든 수십차례 흉기로 피해자를 숨지게 했다면 그는 분명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일 뿐이다.

얼마 전에는 한국의 또 다른 엘리트가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시끄러웠다. 초대형 로펌 출신 미국 변호사의 범행 전후가 녹음된 음성파일 일부가 공개됐는데 당시 처참한 사건 현장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피해자가 평소 녹음해둔 녹음파일에는 가해자 남편이 범행 직후 다선 국회의원을 지냈던 아버지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는 음성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수능만점자 용의자가 마마보이였다면, 이 살인자 변호사는 파파보이였던 것은 아닐까.

이제 한국사회는 시민의식이 없어지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끔찍하고 마음 아픈 사고가 끊이지 않는 나라가 된 것 같다
인공지능이 점차 사회의 모든 분야에 혁신을 이루어내고 그 영향력은 일상생활에까지 미치고 있다.

그러나 AI 시대에서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인간미 아닐까. 때문에 사회 각계에서는 온갖 명목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인성교육은 실제로 어떻게 시킬지 뚜렷한 답이 안보인다. 하루종일 스마트폰에 절여진 청소년들의 뇌들은 감정통제의 어려움 때문에 타인과 공감하는 방법도, 대화를 나누는 방법도 어려워하는 현실이다.


정직, 진실, 성실같은 용어들이 청소년들 대화에 낄 틈은 없어진 세대가 되어버렸다. 인스타그램에서나 틱톡에서 10초짜리 자극적인 동영상을 보면서 말초를 자극하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개인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간미가 그리운 세상이다. 대학생이면 즐길 수 있는 건 모두 다 즐기라고만 말하고, 취업을 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덕목은 스펙이라고 떠들지 말았으면 한다.

학벌 만능주의의 만연으로 인해 오염된 한국사회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학교점수가 마치 교육의 전부인 양 오인되는 사회에서 과연 참된 리더들이 사회를 이끌어줄 수 있을 거라 믿는 것일까. 이제라도 서둘러 인성의 중요성에 관한 캠페인이라도 해야 한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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