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로망스와 노망스

2024-03-18 (월) 07:51:03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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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일을 소원하고 꿈을 꾸고 있을 때 그것을 로망이라고 한다. 이 로망이라는 말은 말 그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시대의 문학에서 시작된 말이다.

로마시대에 언어는 라틴어였는데 그 라틴어로 기록된 문학 작품들 중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표현할 때 로마글자로 쓰여진 책의 주인공이나 인물같다고 하면서 “Romans”라는 말이 나왔다. 이 로망스가 중세시대에는 멋있는 기사도 정신과 함께 엮여진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에 대하여 ‘로망스’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입에서 굳어지게 되었다. 로망스의 사랑, 로망스의 달콤함, 로망스의 행복을 꿈꾸는 것들을 또한 ‘로망'이라고 한다. 그녀는 나의 로망, 그 사람은 나의 로망, 그 일은 나의 로망, 그 곳은 나의 로망이라는 말이 다 로망스와 같은 말이다. 사실 영어로 말한다면 로망스보다는 로맨스가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히 로망스를 꿈꾸고 찾아가는 것이다. 아직도 누가작곡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누구나가 알고있는 ‘로망스'를 들어보면 사랑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사랑의 달콤함과 은은함, 감미로움, 부드러움, 아늑함, 향기로움에 젖어 들게 된다. 그 누가 이 로망스를 거부하고 로망스 앞에 얼굴을 지푸릴 수 있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로망스에 살고, 로망스에 죽고, 로망스에 웃고, 로망스에 우는 인생을 살고 있다. 세상 그 무엇이 없어도 로망스 하나만 간직하고 있다면 그 어느 누구도 불행하다 말할 수 없다. 그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디 황량한 곳에 머물러 있어도 가장 아름답고 최고로 멋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런 로망스가 혹시나 잘못 선을 넘게 되면 로망스의 숭고함보다는 노망스의 혼란함을 가져오게 된다. 원래 노망이라는 말은 상당히 조심스런 말이다. 노망이라는 말은 간혹 기억력이 없거나 정신이 맑지 못해서 의도했던 것들과 다른 말을 할 때 노망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자기 통제나 자기 절제가 원만하지 않을 때 노망이라는 말을 한다. 사실 우리 사람들이 이런 노망이라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인생의 년수가 많아지게 되면 자연적으로 육체가 연약해 지는 것처럼 정신도 약해지니 어찌 우리 사람이 강하다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옳다고 하지만 옳지 않다는 것을 모를 때가 많다.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서당 훈장님이 앞 치아가 없어서 학생들에게 “바람풍”이라고 읽어주었다. 실제로 학생들이 들을 때는 “바람훙"이라고 들리는데 그 훈장님은 그렇게 말하는지 몰랐기에 학생들은 그 바람풍자를 “바람훙"으로 알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자칭 지혜롭다고 하지만 어리석은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고대의 철학자는 “내가 아는 것은 모른다는 사실 뿐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 철학자는 남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지만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지 않은 것은 바로 지혜가 겸손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내 생일파티를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유쾌하다고 해서 밤새도록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면서 자기의 로망스를 누린다고 하지만 사실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노망스의 민폐를 끼치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다가 길을 걸어가는 행인들을 만나면 혹시라도 먼지 날까 조심하며 그 행인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히 그 사람은 로망스를 누리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린도전서 10:24)

내가 원하는 로맨스가 다른 사람도 함께 즐기는 로맨스가 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만족감을 누릴 것이다. 나의 로맨스가 너의 로맨스가 되어 노망스의 슬픔은 없는 그런 로망스의 세상을 로망해 본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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