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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오펜하이머의 세상’

2024-03-15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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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Oppenheimer)’가 7관왕을 차지했다. 오펜하이머 역으로 남우 주연상을 받은 킬리언 머피는 “우리는 원자폭탄을 만든 사람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고 우리 모두 오펜하이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이 영화는 전쟁과 대재앙으로 가득 한 현재를 적절하게 다루고 핵무기의 역사를 깊이있게 성찰했다는 평을 받는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수시로 핵단추를 만지작거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에도 자국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항상 핵전쟁에 준비돼있다.”고 공언했다. 그는 또 “북한이 자체 핵우산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월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핵무기로 표현되는 모든 군사력을 총동원해 징벌할 것’이라며 ‘남조선 전 영토 평정준비’를 외쳤다.


미국의 천재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의 삶을 잠시 돌아보자.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핵무기 개발을 위한 맨하탄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이 원자폭탄은 8월6일 히로시마, 8월9일 나가사키에 투하되었고 8월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다. 덕분에 한반도는 8.15광복을 맞았다.

그 이전, 1941년 12월7일 일본의 진주만 습격에 분노한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은 ‘12월7일’을 ‘치욕 속에 기억될 날’ 이라고 언명했고 미국 의회는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였다. 전쟁을 잘 이끌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1945년 4월12일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같은 날 해리 트루먼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트루먼은 일본의 본토 상륙시 수많은 미군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며 원자폭탄 사용을 결정했다.

영화 속에 뉴멕시코 사막에서의 핵실험 장면이 나온다. 거대한 버섯 모양의 불기둥이 12Km 상공까지 솟아오르는 것을 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상황이 연상된다. 두 번의 폭탄 투하에 약 20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생존자들도 평생 방사능 후유증으로 시달렸다.

피폭자들은 죽은 사람이건 산 사람이건 피부의 껍질이 벗겨져 시커멓게 변했으며 얼굴의 모든 특징이 녹아 없어져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형상이었다고 한다.
“검게 타죽은 나무 한그루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잔디가 마치 구워놓은 것처럼 붉었다. 더 탈 것 이라고는 없었다. 도시 전체가 지워 없어진 상태였다.“ (폭탄 피해상황 보고서 일부)

오펜하이머는 일본의 재앙을 보면서 ‘나는 이제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고 자책하지만 미국은 또 수소폭탄 개발을 하려 든다. 오펜하이머가 반대하자 1954년 공산주의자에게 동조했다면서 오펜하이머를 매카시즘 광풍 속으로 밀어 넣었고 결국 그는 원자력기밀취급 허가를 박탈당했다.

위스컨신 주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는 국무성이 공산주의자의 소굴이라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이 증거를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 마녀사냥식 공산주의자 색출에 나섰지만 결국 엉터리라는 것이 드러났고 1954년 12월 상원은 그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매카시즘, 이 또한 현재 미국 정치의 보수와 진보의 양극화로 볼 때 또 한차례 광풍을 몰고 올 수 있는 단어다. 극우도 위험하고 극좌도 위험하다. 매카시즘은 모든 형태의 극단주의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이라는 역사를 남겼다.

이후 오펜하이머는 1954년 청문회 이후 68년 만인 2022년 말에야 사면 복권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후 핵무기의 위력을 실감한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현재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등의 나라는 수천 개의 핵폭탄을 안고 있다. 이는 전세계가 언제라도 파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위험, 핵군비경쟁 과열, 기후변화 등의 이 시대가 그야말로 ‘오펜하이머의 세상’인 것같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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