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자살하면 떠오르는 한국인은 1970년 11월 13일 분신한 서울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이다. 그는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중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친 것으로 전해진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인권 침해를 겪고 마지막 그가 선택한 항거의 방법이 분신이었던 것.
반인권적인 사회분위기가 지배했던 한국의 군부독재 시대에는 특히 분신자살 사건이 많았다.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일방적인 정권의 부패와 탄압에 맞선 것이다.
그런데 지난주 민주주의의 본산지인 미국에서 현역인 미군의 분신사건이 생중계되었다. “더 이상 제노사이드의 공범이 안 될 것”이라는 외침과 함께 미국내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명분없는 가자지구 전쟁과 이에 대한 미군의 지원에 반대하면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미 공군 현역 병사가 분신자살한 것이다. 25세의 미 공군 소속의 이 병사는 분신의 전과정을 자신의 모바일폰으로 생중계하면서 자신은 제노사이드, 즉 집단학살의 공범이 되지 않겠다고 외쳤다.
이 현역 군인의 극단적 선택으로 미 국방부도 더 이상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대규모 군사행위를 그대로 두기 어려운 입장이 되어버렸다. 이스라엘의 가자공격이 시작된 후, 중동 지역에 주둔해 있던 미군도 그동안 친이란 민병대로부터 공격 타겟이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전 이스라엘과 가까운 요르단 북부 미군 주둔기지 ‘타워 22’가 무인기 드론공격을 받아 애꿎은 미군 3명이 숨지고 다수가 부상당한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이제 직접 타격대상이 되어 이스라엘이 벌이는 중동지역 전쟁에 휘말릴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미군 분신사건으로 더욱 심각해졌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한 공습전에도 수시로 가자지구를 기습 폭격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이스라엘 대 가자 공격에 대해 제노사이드라는 지적이 도처에서 들끓고 있다.
제일 먼저 시작된 곳은 미 대학가. 하버드 대학내 34개 학생단체가 가입된 ‘팔레스타인 연대위원회(PSC)’가 폭력을 일으킨 책임은 전적으로 이스라엘 정부에 있다고 시위에 불을 당겼다.
이 사안이 얼마나 민감하면 평소 친 이스라엘이었던 미 전역의 명문대학들조차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학생들의 반유대주의 발언과 입장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을까. 명문대 총장들도 반이스라엘 데모에 앞장선 학생들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내 많은 대학에서는 친 팔레스타인 학생들을 중심으로 성명 발표나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스라엘 정부의 강경정책이 계속 이어지자 이제는 아예 반유대주의 분위기가 퍼지고 있는 지경까지 도래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자지구내 대학인 이슬람 대학총장까지 지낸 저명한 물리학자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군이 가자 남부의 민간지역에 공습을 가해 최소 몇십명의 팔레스타인이 숨졌다고 보도되는 일은 이제 거의 일상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제노사이드, 대량민간인 학살이라는 단어가 쓰여지고 읽혀지는 끔찍한 사실이 지금 21세기 대명천지에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한때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군사 정권을 향해 피맺힌 절규를 토해냈는데, 이제 평화를 사랑하는 일반 젊은 미국인들까지도 가자지구의 휴전을 울부짖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속히 전쟁을, 학살을 멈추어야 한다.
오는 미 대선에서는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휴전 및 평화를 외치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은 아닐까. 미국민들은 이제 명분없는 전쟁에 신물이 난 상태다. 그들은 대선 후보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다. 먹고 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자꾸 남의 땅에 가서 애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야 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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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