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로지폴소나무의 창조적 파괴’

2024-02-26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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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스톤처럼 깊은 숲속에서는 자연 발생적인 산불이 자주 발생하며 이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옐로우스톤 지역의 주 수종인 로지폴소나무(Lodgepole Pine)는 씨앗이 기름층으로 되어있어 그 자체로는 표면이 썩지 않아 잘 발아되지 않는다.

화재가 일어나야 씨앗의 표면이 제거되고 쉽게 발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로지폴소나무 군락이 번성기를 거쳐 노후화되면 온갖 병균과 해충에 공격을 받아 숲 전체가 황폐화 된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종족의 자멸을 피하고 새 출발하기위해 로지폴소나무는 자신을 스스로 불사른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통해 발생한 불길로 인해 해충과 병균은 모두 타 죽는다. 불길을 이용하여 로지폴소나무는 씨앗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후손을 발아한다.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간다. (마크 뷰케논의 ’Ubiquity’ 중에서)


정상적인 숲은 5-7년마다 자연적으로 작은 불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자연의 대참사를 막으려면 자연이 스스로 일으키는 작은 산불을 막지 말아야 한다. 만일 사람이 나서서 숲이 스스로 일으키는 산불을 인위적으로 통제한다면 후에 천문학적 경비를 대가로 치르게 되거나 큰 재난을 감수해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삶을 열기 위하여 스스로 불태우는 숲처럼, 습관적으로 쌓여있는 자신의 옛것을 태워 없앨 수 있어야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뜩 다가와 있는 늙음을 갱신하려면 자기 비움의 결단은 필수다.

자기 비움은 도약의 시원(始原)이다. 자기 비움 없이 도약은 없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들은 영국 국교회가 성도들에게 영적 자양분을 공급해 주지 못한 것에 실망했다. 성직 매매, 성직 임명제도, 신앙의 세속화가 영국교회의 부패를 낳았다고 청교도들은 판단했고 곧 그것을 버리기 시작했다.

1620년 11월 미 동북부 플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회심 신앙, 단순, 겸손, 검소, 경건의 삶을 공동체의 이름으로 결단했고 사회 계약을 맺어 도약의 첫 발을 내딛었다. 이 계약을 ‘메이플라워 서약(The Mayflower Compact)라고 한다. 노후화 된 로지폴소나무가 스스로를 불태운 것처럼 부패한 옛것의 과감한 포기가 새로운 청교도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위대한 미국 건국의 근간이 되었다.

애굽의 땅에서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은 과거를 선명하게 청산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이삿짐 보따리 안에는 우상의 모양을 새긴 금은 팔찌와 불순물이 많았다.

이것이 나중에 이스라엘 공동체를 총체적으로 뒤흔든 위기를 불렀다. 아무리 값비싼 물건이라도 난파 위기를 만났다면 포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출애굽의 모세가 위대한 것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지팡이 하나만 붙들고 홍해를 건넜기 때문이다. 버리면 산다. 새로워진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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