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까지 살고보니 ‘비움’이라는 단어의 아름다움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비움이란 부족함을 아는 것이다. 이젠 생활규모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조차 바라는 일보다는 잊는 일을, 받는 일보다는 주는 일을 더 생각하게 된다.
그런 마음으로 살다보니 뜻하지않던 일들이 일어난다. 그 ‘비움’이 ‘축복’으로 다시 채워짐을 경험하는 일이 그것이다. 내 개인은 물론 가정사, 친구나 지인들과의 관계도 더욱 아름다워지며 내가 젊었을 때는 맛보지 못했던 기쁨과 행복감을 생활속에서 체험한다. 이런 것을 젊었을 때는 왜 몰랐었을까 아쉬워 하며 ‘불감위선(不敢爲先)‘이란 말을 떠올린다.
인격의 최고 경지는 바로 인간을 사랑하는 것, 겸손, 그리고 ‘불감위선’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불감위선이 되어야 겸손의 단계에 이르고, 겸손해야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것을 담으려면 겸손이라는 비움이 있어야 하는데, 자만, 무모, 아집, 무시, 오만으로 가득 차 있는 그릇에는 아무것도 더 담을 수가 없다. 진정한 도전과 경쟁의 원천은 바로 이 ‘겸손’에 있다.
우리는 물을 통해 겸손의 미덕을 배울 수가 있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나아 간다.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가고 빈 곳은 채워 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뜻 쓰기를 물과 같이 하면 말없는 가운데 공덕이 있다(用意如流水 無言有功德)”. 물과 같은 마음! 이것이 바로 사랑이요, 겸손이며, ‘불감위선’인 것이 아닐까?
문득, 최원(崔瑗)의 ‘좌우명(座右銘) <守愚含光 (수우함광)>이 생각난다. 無使名過實 守愚聖所藏 在涅貴不淄 曖曖內含光(무사명과실 수우성소장 재날귀불치 애애내함광) 즉, “명성이 실제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하나니 어리석음을 지키는 것은 성인도 지닌 바였다. 검은 곳에 있어도 검어지지 않음을 귀히 여기고 어둠에서도 속으로 빛을 지녀라.”
“어리석음을 지키라”는 구(句)는 “속으로 지혜로워도 그것을 너무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노자(老子)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검은 곳에 있어도 검어지지 않는다”는 구(句)는 공자(孔子)의 말이다. 이처럼 유가(儒家)와 도가(道家)를 잘 섞어 빚어낸 그의 글은 후대 모든 좌우명의 원조(元祖)가 되었다.
그런가하면, 옛날 주(周)의 제후국인 노(魯)나라 환공은 의기라는 그릇을 늘 가까이 두고 자신을 경계하였다고 한다. 공자께서도 이 그릇을 의자 오른쪽에 두고 반성의 자료로 삼았다 하는 그릇이다. 이 그릇은 텅 비면 기울어지고 가득 채우면 엎어지고 중간 정도 채우면 반듯해지는 그릇이다.
공자께서 이 의기가 의미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풀었다. “총명하고 예지가 뛰어나도 스스로 어리석다 여기며 살아가고 공적이 온 세상을 다 덮어도 사양으로써 이를 지키고 용맹함이 세상을 뒤흔들어도 항상 두려워하며 조심하고, 부유함이 천하에 가득해도 겸손으로서 이를 지켜라.“ 이 의기는 한마디로 가득 채우지 말고 반쯤 비워 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성공적인 직장인의 조건도 위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께서 생전에 손수 쓰셔서 사랑방 머리맡에 걸어놓으시고 즐기시던 문구도 아울러 생각난다. “선부재정처(禪不在靜處) 역부재료처(亦不在鬧處) 부재일용응연처(不在日用應然處)부재사량분별처(不在思量分別處)’가 그것이다. 중국 송대 대혜선사의 어록 중 24자를 적은 나의 아버지의 휘호이다.
“선(禪)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으며, 날마다 관련 맺는 일에도 있지 않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에도 있지 않다’는 뜻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비록 그것이 시끄러운 저잣거리라 할지라도 매이지 않고 흔들림 없는 고요하고 비운 마음을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경지에 들어서야 진정한 선을 할 수 있다는 뜻인 줄로 안다.
한자 빌 허(虛)는 비어있기 때문에 비어있는 것이지만, 빌 공(空)은 가득차 있기 때문에 비어있는 것이다. 상반된 비움이 아닐 수 없다. 공(空)의 비움이 곧 행복이 아닐까. 세상사에서 사람의 계획이나 의지대로 되는 일은 없다. 사람이 노력해야 할 것은 오직 ’정성(精誠)‘과 ‘비움’이요 ‘채움’은 하늘의 몫이라는 것을 최근 우리 가정에 귀한 은혜로 채워주시며 이를 입증해 보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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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렬/‘뿌리와 샘’ 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