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연하의 제자가 먼저 가다니⋯”

2024-02-02 (금) 임형빈/한미충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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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날 교편생활을 하면서 많은 제자를 두었는데 수개월 전에 가장 아끼며 사랑하는 제자가 세상을 떠났다.

그 제자와는 2011년 6월 어느 날 전화가 오면서 다시 만나게 되었었다, 전화기를 꺼내 들고 “누구세요” 했더니 “미안하지만 혹시 예전에 서대문 국민학교에 계신 적이 있으신지요? 하고 묻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그런데요. ” , “그럼 임 선생님이시지요? 저 병숙이에요. 기억하시겠어요? ”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너 6학년 6반 반장이던 유병숙이란 말이냐?”하자 “ 네 선생님 저예요!”하는 대답이 왔다. 우리 두 사람은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60년 전 6.25 사변이 일어나던 때였다.
당시 나는 6학년 6반 담임선생으로 있을 때 병숙이는 그 반 반장으로 공부도 1등이었다. 6학년을 졸업하고 근처에 있는 이화여중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 여중생이 되었다. 그러자 6.25가 터지고 서로 만날 기회도 없었고, 소식도 모른 채 60년이란 세월이 지나간 것이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의 부친은 당시 성결교회 목사님으로 계시다 북한군에 납치된 후 생사도 모르는 처지라 했다. 이후 편모슬하에서 얼마나 고생이 심했겠는가! 가히 짐작이 갔다

그런 그를 생각지도 못한 뉴욕에서 극적으로 만날 수 있다니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병숙의 이야기로는 신문, 방송 등 각종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내 모습을 보고 6학년 때 담임이었던 임 선생님의 모습인 것 같아 언젠가 한번 확인해봐야겠다 하면서도 이민 생활에 늘 휘말리다 보니 그만 늦어졌다고 했다.

내가 1981년도에 이민 왔고 병숙이는 1983년도에 왔다 하니 나보다 2년 후에 온 셈이다. 세월이 무상하다고나 할까 그때 그는 이미 70여세 노 할머니가 되었으니 나와 같이 늙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 후 장석진 목사가 시무하는 성결교회 권사 직분까지 맡고 정성껏 섬기며 1년에 한두 차례 만나 식사 하고 담소도 나누기도 했던 그가 수 년 전 병석에 누워 신음하다 급기야 요양원에 입소한 후로부터는 전화 통화도 단절된 상태가 됐다.

그러던 어느날, 꿈에 그가 손을 흔들고 미소 지으며 “안녕!” 하는 모습을 보고 꿈을 깨고 나서 불현듯 소식이 궁금해 졌으나 그의 전화도 불통이니 어찌하랴! 그래서 묵은 수첩을 뒤지다 그의 집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저녁 시간에 전화를 거니 다행히 전화통화가 이루어져 그의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래서 “ 어머니가 요양원에 입소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는데 그 후 환후가 어떠시냐?” 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수개월 전에 이미 작고하셨다 했다. 순간 나는 목이 메어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지나간 그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에서 맴돌 뿐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세상에는 먼저 왔다 나중에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중에 왔다 먼저 가는 사람도 있으니 세상 이치로는 나이 순서대로라면 내가 먼저 가는 것이 도리인데 연하의 제자가 먼저 가다니, 이것이 인생이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임형빈/한미충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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