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그 분의 음성이 크게 들릴 때’

2024-01-29 (월) 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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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사울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를 수 있는 황금의 기회가 두 번 있었다. 처음 기회는 엔게디 동굴 안에서였다. 다윗은 부하 600명을 데리고 엔게디 동굴 안에 피신해 있었다. 이때 사울은 잠간 휴식을 취하기 위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독 안에 든 쥐와 같았다. 두 번째 기회는 사울과 군대장관 아브넬을 위시한 모든 군대가 진을 구축하고 깊이 잠들어 있을 때였다. 다윗은 아비새를 데리고 적진을 은밀하게 침투, 수색했다. 이때 사울의 음성이 가까이 들려 왔다. 아비새는 다윗에게 직언했다. ”여기에 당신의 기회가 있습니다. 청하오니 나로 단번에 그에게 창을 꽂게 하소서.“ 부하들의 직언은 강렬했다. 다윗은 부하들의 직언을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깊은 생각 끝에 거부한 것이 아니라 말씀 경청에 따른 거부였다. (사무엘상 24장, 26장 중에서)

다윗도 사울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반감은 복수심으로 변했다. 사울의 겉옷자락을 자를 때만 해도 다윗은 거의 살인죄를 저지를 뻔했다. 하지만 그 후 어느 순간-하나님이 개입한 순간-다윗의 신앙은 갑자기 관솔불처럼 되살아났다. 사울을 파괴하면 자신도 파괴될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 한 가운데 증폭되어 메아리쳤다.

다윗은 복수를 부추기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사울을 죽이지 말라. 손도 대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을 치면 어찌 죄가 없겠느냐.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이 말을 들은 다윗의 부하들은 뒤로 물러섰고 사울은 동굴 밖에 서서 오래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 사울은 다윗에게 말한다. “나는 너를 괴롭혔는데 너는 내게 이렇게 선대해 주었으니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주께서 너에게 선으로 갚아 주시기 원하노라.”
거대한 야망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 왜 다윗에게 없었겠는가.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무엇인가를 비겁하게 해치우려는 시도를 단호하게 억제했다. 다윗의 이 위대한 절제의 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하나님에게 대한 경청(傾聽)이다. 신중하게 경청할 때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평소보다 수십 배, 수백 배 증폭된 확성기처럼 들었다. 그때마다 다윗의 신앙과 인품은 도약했다.

소리가 고막을 진동한다고 해서 사람이 모든 소리를 다 듣지는 못한다. 고막에서 진동된 소리가 내이(內耳) 깊숙한 곳에 위치한 추골, 침골병을 통과하면서 본래의 소리를 몇 배로 증폭시켜 줘야 소리를 잘 듣는다. 이것을 버클링효과(buckling effect)라고 한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다윗은 우레소리같이 들었다. 다윗의 영적 버클링효과가 탁월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상수리나무 곁에서, 모세는 불타는 숲속에서, 요나는 큰 물고기 속에서, 베드로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 분의 세미한 음성을 우레소리같이 증폭하여 들었다. 세상은 이들의 경청의 능력에 다 놀랐다. A/G 뉴욕신학대학원 봄 학기 영성수련회를 김남수 원로목사를 모시고 갖는다. 주의 음성이 크게 들려오기를 간구한다.

<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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