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접촉가설’

2024-01-22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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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편견은 어디서 오는가. 적대감으로 멀어진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 질문은 나의 평생의 연구 과제였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1943년 디트로이트에서 발생한 인종 폭동을 연구한 사회학자들이 명명한 ‘접촉가설’에서 찾아냈다. ‘접촉 가설’은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접촉이 빈번하여 서로 가까운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끼리는 폭력이나 적대적 행동을 표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군수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백인 노동자와 흑인 노동자 사이에는 아무 불상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만나는 것만큼 서로 사랑할 수 있다.’”
(고든 올포트의 ‘The Nature of Prejudice’ 중에서)

대만의 북부 타이페이에 살고있는 한 청년이 멀리 남부의 산간지방에 살고있는 한 여성을 열렬히 사랑하고 연모했다. 이 청년이 그리운 마음을 누르지 못해 결혼해달라는 내용의 연서(戀書)를 수없이 써 보냈다. 2년 후에 이 여성이 마침내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결혼 상대자는 열렬한 연모의 편지를 써 보낸 청년이 아니었다. 그 상대는 우체부였다. 2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무리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배달해준 우체부에게 감동을 받아 그와 결혼한 것이다. 이 여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날마다 만나는 힘, 날마다 반복되는 접촉 학습이 인지 능력을 높이고 감동을 일으킨 것이다. 접촉의 힘이 이처럼 놀랍다.


부동산 담보가 없으면 미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 가도 단 100달러 빌리기도 어렵다. 하지만 상환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라도 ‘끈끈한 친구관계’를 담보로 하여 돈을 대출받을 수 있다. 이것을 ‘집단대출’이라고 한다.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와 룻은 갑자기 불어 닥친 가족 구성원의 비극적 상실과 가난으로 좌절이 깊었다. 두 여인은 서로 의지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살았다. 특별히 나오미를 향한 룻의 감동적인 사랑의 고백은 만인의 심금(心琴)을 울린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이방 모압 땅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이 이삭을 주우러 보아스의 밭에 나타났다. 여기저기서 주민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는 보리 추수의 절정이었다. 이때 보아스는 친구처럼, 연인처럼 한마음이 되어 살아가는 두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 보아스는 그들을 애틋한 아가페의 사랑으로 품어주었다. 이 고엘 제도의 실천은 접촉가설의 대표적 스토리다.

‘단순한 기도’의 저자 존 달림플은 말했다. “로널드 리건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직접 만나 함께 보낸 사실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도 이와 똑같다. 우선 그분과 만나 인격적인 접촉을 쌓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낯선 이웃을 인격적으로 접촉하고 사랑해야 한다.” 무엇인가 힘 있게 퍼지려면 전염성이 강한 사람이 필요하다. 사회적 개혁이든 전염병이든 그 성공은 접촉의 질과 횟수에 달려있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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