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아홉 개의 사과

2024-01-19 (금) 폴 김/전 재미부동산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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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아무리 많이 올랐다 해도 냉장고에 항상 재어놓고, 아침에 빼놓지 않고 먹는 것이 사과이다. 알칼리성 식품인 사과는 비타민C와 칼륨 등 무기질이 풍부해 고혈압 예방 및 치료에 도움이 된다. 또한 섬유질이 많아 장에 좋고 철분 흡수율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는 걸 보면, ‘아침에 먹는 사과 한 개는 보약이다’는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사과는 인류의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던진 상징으로 종종 거론된다.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모리스드니는 인류의 3대 사과로서 첫 번째는 기독교 탄생의 근거와 인류역사의 신기원이 되기도 한 ‘아담과 이브의 사과’를, 다음은 머리맡에 떨어진 사과에서 영감을 얻어 지상계의 사과와 천상계의 달이 모두 보편적인 중력이 적용된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세운 ‘뉴턴의 사과’를, 마지막으로는 사물의 질서를 재창조해낸 정물화 속 ‘폴세잔의 사과’를 꼽았다.

파리에는 프랑크스 커티라는 현대 조각가의 ‘네 번째 사과’라는 작품이 있다. 제2차세계대전 때의 폭격으로 샤를르 푸리에의조상(彫像, statue)이 파괴되고 남은 기단 위에 작가가 사과로 대체해 복원한 것으로, 상업자본주의의 횡포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사회로서 팔랑스테르를 결성한 푸리에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완성했다.


이외에도 트로이의 멸망을 불러온 그리스 신화의 ‘파리스의 황금사과’, 프리드리히 실러의 희곡과 조아키노 로시니의 오페라로 유명한 ‘빌헬름텔의 사과’가 그 뒤를 잇는다.

오늘날에는 Apple의 로고, 즉 스티브 잡스의 ‘한 입 깨문 사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1977년 스티브 잡스가 만든 세계최초의 일체형 개인 컴퓨터인 ’애플II‘의 개발을 시작으로 인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정보화시대를 열 수 있게 되었다.

또다른 사과는 우리의 생활터전인 뉴욕의 닉네임 ‘The Big Apple’이다. 그 이름의 유래는 미국 경제 전체를 나무로 봤을 때 뉴욕은 잔가지나 줄기가 아니라 결실로 응집되는 과실에 해당된다 하여 붙여졌다.

마지막 아홉 번째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스피노자의 사과나무’이다. 마르틴 루터의 일기장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이 대목의 화두는 사과가 아니라 사과나무라 생각된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하는 것이, 알 수 없는 미래, 장담할 수 없는 내일을 지나치게 걱정하여 움츠러들기보다는, 오늘 우리에게 펼쳐진 이 땅을 뚜벅뚜벅 내딛으며 나아가는 게 우리의 숙명임을 일깨워준다. 오늘아침도 사과 한 입 베어물고 힘차게 출발한다.

<폴 김/전 재미부동산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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