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정체성이 뭘까요?

2024-01-12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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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배우 스티븐 연(1983년생)이 지난 7일 열린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의 대니 역으로 TV미니시리즈 및 영화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화가 많은 남자 대니와 우울하고 돈많은 여성 에이미가 서로 죽기살기로 보복을 계속하는 블랙 코미디인데 한번 보면 끝까지 봐야 할 정도로 속도감이 빠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이성진 감독의 실제 경험이 소재가 된 한인이민사회 풍경이 정곡을 콕콕 찌르며 담겨져 있다.

그런가 하면 뉴욕타임스는 지난 5일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에 출연한 한국배우 유태오를 제96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로 꼽았다. 이 영화는 어린 시절 헤어진 뒤 20여년 만에 뉴욕에서 재회한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유태오(1981년생)는 독일 퀼른에서 파독광부 출신 아버지와 파독간호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그는 10대 후반 시절, 거울을 보면서 ‘내가 동양인처럼 생겼네.’ 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10년 이상의 무명생활을 하는 동안 ‘촬영장에서 유일한 이방인 같다’고 생각했고 이 정체성의 혼란을 뉴욕에서 만난 사진작가 니키 리를 만나면서 정리가 되었다고 한다. 연상의 아내 니키 리(1970년생)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만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니키 리(이승희)는 뉴욕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1997년~2001년 ’프로젝트 시리즈‘를 발표했다. ’프로젝트‘가 뉴욕에서 첫 전시회를 열 때 맨하탄 전시장을 찾은 적이 있다. 키가 자그마하고 말이 별로 없는 단발머리 여성이었다.

작품 속 드랙퀸, 펑크족, 댄서, 레즈비언, 직장인, 여고생, 노인으로 변신한 니키 리는 다양한 문화와 사회 계층에 습자지처럼 스며 들어가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3개월 정도 함께 생활하고 친해지면서 환경과 주변인물들 영향으로 무한대의 변신을 하는 정체성을 말했던 것이다. 사진은 누가 찍었냐고 하자 행인, 지인에게 ‘똑딱이 카메라‘로 찍어달라’ 했다고 했다.

사실, ‘정체성’이란 말조차 모호하니 추상적이다. 요즘 뜨는 한인 배우나 작가들이 수상소감이나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정체성’이다. 스티븐 연은 “평소 내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은 고독과 고립에 관한 것인데 여기에 와서 이런 순간을 맞으니 겨울왕국의 줄거리와도 같은 느낌이라는 것을 방금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5살 때 가족과 미국으로 건너와 여기저기서 거절당하는 삶을 살았다.

또한 이성진 감독은 “과거에는 어떻게 하면 미국인이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한국계 미국인들이 더이상 정체성으로 인해 미국인을 비롯 타인종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몇 사람의 노력으로 된 것은 아니다. 2010년대 중후반~ 2020년대의 한류 열풍에 BTS, 블랙핑크 등 K팝, ‘오징어게임’ 등의 한국드라마, 영화 등이 인기를 끌면서 긍정적으로도 작용했다.


우리는 한인 2세, 3세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한글, 역사, 문화 교육을 체험하고 익혀서 자긍심 및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해야 한다고 한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 센터가 2022년 7월5일부터 2023년 1월27일까지 총 7,006명의 한인을 포함한 아시안 성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었다. 그 결과 한인 4명 중 1명이 ‘정체성을 숨긴 적이 있다.’고 답했었다.

문화, 종교적 관습, 음식, 의상 등과 같은 인종적 유산과 특성, 정체성을 비아시안들에게 숨긴 적이 있다는 것이다. 타인이 이해하지 못할까봐, 백인들에 동화되기 위해 등등이라고 한다.

이제는 1세대들이 백인사회에 정착코자 영어만 쓰라고 하는 시대도 아니고, 모든 것은 자기 하기에 딸려있다. 지금은 유튜브를 비롯 소셜미디어가 너무 발달하여 다국적, 다문화가 갈등을 해소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갖게 한다. 정체성은 미국, 한국 어느 쪽이 익숙한가 상관없이 독립된 개체로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정체성은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냥 자신의 모습 그대로 통해야 한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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