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편지
2023-12-04 (월) 07:54:27
윤석호 워싱턴문인회 회원, MD
우체국은 더 이상 마음의 거래를
중계하지 않습니다
겉봉을 쓰든 망설임과 우표를 붙이든
용기는 배달만 번거롭게 할 뿐이겠지요
소인이라도 두들겨 박아야
마음이 놓일 것 같은데
밤새 자판을 다독거려 받아낸 진술은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음표 다 떨어진 겨울 숲의 바람이
날마다 다르게 불고 있습니다
나무의 악상이 매일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허기진 새들이 투덜거립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적어 보내려면
연필처럼 검게 탄 속을
미리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겨울 숲은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들도 지금 소름 돋은 몸으로 또 한 번의
기억을 줄기에 새겨 넣고 있으니까요
껍데기뿐인 풍선도 팽팽함으로 버틸 줄 알고
대나무도 빈속으로 한 시절을
꼬장꼬장 견디고 있습니다
살아온 날은 그 사람의 시대였으니
표정 안에 박혀 있는 시간의 흔적들을
지우는 일은 쉽지 않겠지요
수없이 반복되는 것을 진동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정점에 닿지 못하고
복귀와 이탈이 서로를 부추깁니다
이불을 둘러쓰고 가늘게 떨고 있습니다
자른다는 것은 멀쩡한 몸뚱이를
둘로 끊는 일이기에
무모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동 없이 꽃이 피고
보람 없이 꽃이 집니다
오후 늦게 하늘의 지령처럼 눈이 내립니다
사랑은 지극히 작은 문만 고집하는
견고한 씨앗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씨앗을 만지작거립니다
<윤석호 워싱턴문인회 회원,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