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산수의 환시

2025-11-04 (화) 07:49:52 이중길 포토맥 문학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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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뜰의 감나무 가지에
해의 마음을 품은 둥근 얼굴이
초롱처럼 매달려 있다

지난 봄 까마귀가 날아와
검은 부리로 꽃눈에 몸살을 심어 주며
그 흔적을 감싸고 안은 벌들이
꽃잎 속에 작은 봉오리를 만들어 주었다

뜨거운 햇살에 몸살 하더니
가을이 되어 붉어진 둥근 얼굴
사랑의 냄새를 콕콕 찍어보는
참새들의 입맛을 바라볼 때


바람 속의 은은한 향기를 쫓아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 다람쥐
날카로운 입질로 떨어지는 붉은 그림자
나무 밑에 감추는 능숙한 앞발을 바라본다

갑자기 얼굴을 흔들고 가는 찬바람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유혹의 열매를 훔쳐가는 사이로
산수의 환시가 뜬다

오는 것보다 가는 것이 많은
우리들의 삶처럼
아쉬움이 쌓인다

<이중길 포토맥 문학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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