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듀크 김의 서부 여행기-브라이스 캐년, 홀슈 밴드, 앤털롭 캐년, 모뉴먼트 밸리

2025-10-31 (금) 07: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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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활함 속의 자유와 고독이 나를 이끌다

듀크 김의 서부 여행기-브라이스 캐년, 홀슈 밴드, 앤털롭 캐년, 모뉴먼트 밸리
8월 1일 늦은 오후, 동트기 전부터 시작한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자이언 캐년(Zion Canyon)의 일정을 끝내고, 다음 여정지인 브라이스 캐년(Bryce Canyon)을 향하여 차를 몰고 구비 구비 자이언 캐년의 국립공원 지역을 벗어나니, 시야가 확 트이며 광활한 유타 주의 다른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자이언 캐년으로 이어지는 여정이 붉은 흙먼지 속에 시작되었다면, 유타 주 남부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설수록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네바다의 황량한 사막과는 확연히 다르다. 푸른 풀밭과 목가풍의 농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떼들의 정경은, 거친 미 서부의 한복판에서 발견한 평화롭고 풍요로운 모습은, 마치 삶의 극과 극을 경험하는 듯한 강렬한 대비의 연속이다.


제1막 자이언의 열기와 브라이스의 청량함


자이언 캐년을 떠나던 날, 나바호 사암 절벽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강렬한 태양빛은 나의 드러난 맨살을 검게 그슬리고, 그 거대한 붉은 바위산들 앞에 나는 한낱 작은 미물에 지나지 않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세 시간여를 달려 해질 무렵에 도착한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 지역에 도착했을 때 기온은, 마치 마법처럼 뚝 떨어져 있어 자켓을 꺼내 입어야 할 정도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나도 모르는 새에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곳에 서 있는 것이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하고, 공기는 너무나 청량하며 상쾌하기 그지없다.
다음날, 브라이스 캐년에서의 협곡 아래로 깊숙이 내려가는 하이킹은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발밑으로는 오렌지 빛, 분홍 빛, 흰색이 어우러진 각양각색의 기묘한(Hoodoos)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마치 신들이 빚어놓은 거대한 조각공원이거나 정원인 것이다. 좁은 길을 따라 붉은 황톳길을 걷다보면 시야 가득 펼쳐지는 수천 개의 첨탑들과 햇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후두들의 색채는 황홀하여 탄성을 자아낸다.

브라이스 캐년은 계곡이 아닌, 장구한 세월동안 침식으로 인한 웅장한 `자연 원형 극장’이었고, 이곳을 걸으며 맡았던 흙 내음과 잠시 스쳐지나듯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은 잊을 수 없는 감동과 추억으로 남는다.


제2막 자연이 빚어낸 마스터피스: 홀슈 밴드와 앤털롭 캐년

브라이스를 뒤로하고, 이제 애리조나 주의 페이지(Page)를 향하여 남쪽으로, 다시 세 시간여 동안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광활한 대지를, 크루즈 컨트롤 모드로 해놓고 한가롭게 경치를 즐기며 달리는데, 문득 특이한 점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거의 일정한 간격으로 커다란 레저용 보트를 끌고 가는 트럭들이 한동안 계속 되는데, 유타 주의 사람들이 애리조나의 콜로라도 강으로 레저를 즐기러 가는 것이다.

홀슈 밴드는 콜로라도 강이 오랜 세월에 걸쳐 나바호 사암을 깎아내며 만든 거대한 말발굽 모양의 깊은 협곡이다. 해발 1,300m 높이의 아찔한 절벽 위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에메랄드빛 콜로라도 강줄기가 270도로 급회전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자연의 힘이 빚은 마스터피스인 것이다.

그리고 이곳으로 부터 불과 20여분 거리에 있는 앤털롭 캐년에 가본다. 한가지, 알아두면 좋은 점은 62세 이상 시니어인 분들은 나와 같이 미국 내 국립공원 여행을 하고자 할 때, 평생 회원권을 사놓으면 크게 도움이 된다. 모든 국립공원이 무료입장인 셈이지만, 이곳 ㅇㅐ리조나 나바호 인디언이 관리하는 인디언 나라에서는 사용이 안된다.


앤털롭 캐년은 평평하게만 보이는 사막인데,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생긴 급류가 부드러운 사암을 수백만 년 동안 침식시키며 좁고 부드럽게 빚어낸 슬롯 캐년(Slot Canyon)이란다. 협곡의 좁은 틈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외부의 황량함과는 완전히 다른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물살의 소용돌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사암 벽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태양빛이 좁은 틈을 통해 들어와 벽에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은 숨이 멎을 듯 아름답다. 햇빛이 가장 깊숙이 스며드는 정오 무렵, 협곡 바닥으로 떨어지는 햇빛과 잘 빚어진 사암의 벽이 만들어내는 작품은 신의 경지라 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제3막 나바호의 성지: 모뉴먼트 밸리의 대 서사

페이지를 떠나 모뉴먼트 밸리로 향하는 드라이브는 다시 광활함과 고독 속으로 나를 이끈다. 애리조나와 유타의 경계에 있는 이곳은 나바호 인디언 부족(Navajo Nation)의 중심부이며, 그들에게는 신성한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모뉴먼트 밸리로 향하는 163번 국도는 미 서부의 상징과도 같다 한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황량하고 거칠지만, 그 광활함 속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고독감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붉은 사막의 평원에 드문드문 돋아 나있는 사막의 식물들, 그리고 멀리 지평선에 솟아있는 거대한 바위 기둥들은 , 마치 태초의 지구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에 빠지게 한다.

마침내 모뉴먼트 밸리 나바호 부족 공원(Monument Valley Navajo Tribal Park)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지금까지의 여느 풍경과는 전혀 다르다. 태초의 지구가 아닌 금성에 온 게 아닐까? 끝없는 붉은 대지 위에 거대한 바위산(Mesa) 단단한 바위기둥들(Butte)들이 솟아있는 광경은 과히 말로 글로 다 형용키 어렵다.

우리시대 극장에서 티비에서 보던 대부분의 서부영화가 이곳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 ‘황야의 결투’ ‘아파치 요새’….
모뉴먼트 밸리의 풍경은 그야말로 대서사적이며 압도적이며 장엄하기만 하다. 특히 동틀 녘의 붉은 태양이 모든 기둥을 황금빛과 주홍빛으로 물들일 때, 나는 이 거대한 광경 앞에서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미미하며 동시에 이처럼 위대한 자연과 연결되어 있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 체험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듀크 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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