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

2023-10-20 (금) 민병임 논설위원
크게 작게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신명기 11:8~12)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가나안땅은 곡물을 심을 수 없는 척박한 땅, 그러나 건조한 날씨에 양떼를 키울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젖을 얻기 적절했다. 또 골짜기에 숨은 샘 곁에서 자라는 과실수는 단맛이 강하다. 지금도 이 지역의 포도, 무화과, 대추야자는 당도가 높다. 비록 농사는 못짓지만 하나님이 일년 365일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켜 보호해 주시는 땅이라고도 해석된다.

가나안은 시나이 반도와 아나폴리아 사이에 있는 해안 지역을 가리키는 옛지명으로 오늘날 레반트 지역에 속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북부, 시리아 일부 지역이다. 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이 요즘 ‘피와 살이 튀는 전장’이 되었다.


가자 분쟁의 불씨는 1948년 신생국 이스라엘과 아랍연합의 1차 중동전쟁이 시작이다. 이 전쟁으로 서안지구는 요르단 차지가 됐고 가자는 이집트 수중에 떨어졌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1993년 오슬로협정으로 반환, 팔레스타인 자치구), 시나이반도(1982년 평화협정으로 이집트 반환), 골란고원 등을 전리품으로 챙긴 후 이스라엘 정착촌을 만들기 시작했다.

3차 중동전쟁에서 아랍연합군(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이 모두 이스라엘에 패한 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국경선은 더욱 견고해졌다. 강한 지도자가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난민 신세로 떨어졌다.

1987년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이 시작되었으나 2006년 총선이후 가자는 강경파 하마스가 지배하고 서안(West Bank)지구는 온건파 파타가 통치하는 이중권력 상태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서방(미국, 유럽, 이스라엘)대 이슬람문화권(아랍 및 페르시아계, 파키스탄)의 군사적 대립의 근원이자 테러 분쟁 핵심지라 할 수 있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 본토를 기습폭격, 민간인을 학살하고 인질을 납치하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전면봉쇄하고 대규모 보복공습을 했다. 이스라엘측에서 보면 팔레스타인은 갓난아기와 여성들까지 잔인하게 죽이는 테러리스트이고 팔레스타인측에서 보면 땅과 종교적 상징을 빼앗아가는 점령자이다.

중동의 전쟁은 전세계에도 영향을 미쳐 각국마다 이스라엘 지지와 팔레스타인 지지로 분열되고 있다. 가장 많은 유대인이 사는 뉴욕도 긴장하고 있다. 8일 타임스 스퀘어에서 이스라엘 지지시위와 팔레스타인 하마스 지지시위가 맞서며 경찰이 출동했었다. 지난 10일부터 유대교 회랑과 이슬람교 사원 인근에 대한 순찰도 강화되었다.

기원전 1,800년 경에 헤브론에 살았다고 알려진 아브라함(아랍어로 이브라힘)은 아랍과 유대 민족의 시조이다. 이스라엘민족은 아브라함의 첫째 부인 사라의 아들 이삭의 후손, 아랍민족은 여종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의 ‘샬롬(shanlom)’은 안녕하세요, 잘가세요라는 일반적 인사로 평화, 평강, 평안을 의미한다. 팔레스타인 인사말로 ‘샬람, 알레이 쿰’은 ‘당신의 평화를 빈다’이다. 샬롬과 샬람은 비슷한 발음으로 모두 ‘평화’ 라는 뜻이다. 그런데 입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 한 형제의 후손들이 죽으라고 싸우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극우도 아니고 극좌도 아니고 중도의 목소리이다. 한쪽으로 치우친 목소리는 권력욕으로밖에 볼 수가 없다. 더 이상은 ‘피가 피를 부르는’ 확전은 막아야 한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니 유대인과 가족, 친척이 되기도 하고 팔레스타인인과 비즈니스로 인연이 맺어지기도 한다. 이들의 가족이 전쟁터를 방문 중이거나 군입대를 한 일도 생겼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더 이상의 전쟁을 멈춰달라며 ‘평화’를 외치는 길밖에 없다. 모든 이가 전장에서 무사히 집으로 가고 제2의 고향 뉴욕으로도 돌아오기 바란다.

<민병임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