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 어머니의 기도

2023-10-17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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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한 일은 별로 없는데 한 가지가 있다면 평생 어머니를 모신 것이다. 나는 6남매 중 막내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형들이 어머니를 모실 형편이 되지 않아 결국 내가 모셨다.

부산 피난 시절 나는 어머니와 함께 하꼬방(사과상자 등으로 지은 집)에 살았다. 비가 몹시 내리는 날이었는데 한데에서 비를 맞으며 밥을 짓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혼자 기도하실 때 소리를 내어 기도하시기 때문에 기도 소리가 다 들린다.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이 많았고 자기를 위한 기도는 매우 적었다.

내가 이만큼 된 것도 어머니의 기도의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를 위하여 기도해 주는 사람은 두 사람 밖에 없다. 한 사람은 나의 어머니이고 다른 사람은 목사님이다.
목사님의 경우는 나의 문제를 아셔야 기도가 가능하다. 따라서 목사님의 기도를 받으려면 나의 문제를 목사님에게 알려야 한다.


나의 고향은 38선 이북인데 나는 서울에 와서 공부를 하였다.
어머니는 나를 보시기 위하여 그 어려운 38선을 세 번 건너다니시며 나를 찾으셨다. 어머니의 희생은 한이 없다. 어머니가 아들의 사랑은 가장 실감있게 느끼시는 것은 아들의 손이 어머니의 몸에 닿을 때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자주 어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그것을 어머니는 가장 기뻐하셨다. 아들의 손이 어깨에 닫는 느낌을 좋아하셨던 것이다. 몇 번은 어머니를 업어드렸는데 이것도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셨다.

역시 피부의 접촉이 사랑을 느끼게 한 것 같다. 그러니 효도하는 방법은 어머니의 몸에 접촉하는 것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교회에 가면 목사보다는 나를 더 바라보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사랑은 한이 없다.

그러니 효도는 언제나 계속 되어야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장례를 치르고 내 묘를 어머니 묘 바로 옆에 사 놓았다. 죽어서도 어머니 곁에 있을 생각이다.
효(孝)는 동양 도덕의 근간이다. 효를 모르는 자가 다른 덕을 말할 수는 없다. 옛날이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들어가는 학교는 어머니라는 학교이다.

어머니의 무릎은 우리의 교실이며 어머니의 가슴은 우리들의 교과서였다.
어머니는 가장 위대한 교사요 설교자요 안내자였다. 사람이 사람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의 머리가 아파도 어머니의 키스 한 번이면 다 나았다. 어머 니는 위대한 의사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많은 죄수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고 죄를 뉘우친다고 한다. 어머니의 영향은 성인이 된 후에도 오래오래 이어진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사랑을 늘 기억해야 한다.

어머니만큼 나를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 어떤 이는 어머니는 바보라고 말한다. 바보처럼 나를 믿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 주일이 아니더라도 가끔 어머니를 생각하고 감사헌금을 바친다. 그렇게라도 해서 어머니의 사랑을 되새기기 위해서이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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