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쿼바디스, 도미네?”

2023-10-13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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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헌 옷과 신발을 버리려고 플러싱의 한인마트 주차장에 있는 의류수거함으로 갔다. 그 앞에 히스패닉 청년 세 명이 버려진 옷들을 들춰보고 있었다. 종이봉투를 들고 가까이 다가가자 “신발이 있느냐?”고 물었다. 신발 봉투를 보더니 희색이 만연, 열어보더니 여성용 신발이자 그냥 두고 가버렸다.

일주일 전 아스토리아 주유소에서 개스를 넣으면서는 주유소 한켠에 놓인 의류수거함 위에 어린아이가 올라가서 그 안의 옷들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은 그 앞에서 옷들을 펼쳐 자신에게 맞는지 대어보고는 다시 얌전히 비닐봉지에 묶어 도로 넣고 있었다. 후드점퍼에 배낭을 맨 청년들은 신분미비자같았고 아스토리아에서 본 가족은 난민처럼 보였다.

뉴욕은 지금 난민 포화상태이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지역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오며 시 당국이 임시수용시설을 만들고 생활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베이사이드 지역에도 초대형 난민텐트촌이 들어섰다.


뉴욕시 보호시설에 입소한 이민자와 노숙자 등은 11만 명에 달하며 작년 1월 4만5,000명보다 두 배이상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고 규모라 한다. 뉴욕시에 이민자들이 몰리는 것은 전국 유일하게 망명 신청자들에게 거주지를 제공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 숙박과 의료시설, 어린이 난민 신청자를 교육 서비스 제공을 해야 하므로 난민 급증은 바로 뉴욕의 재정 부담으로 연결된다.

지난 2일 캐시 호쿨 뉴욕 주지사는 합법적으로 취업자격을 얻은 망명신청자들을 위한 일자리를 1만8,000개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임시보호 지위를 갖게 되면 노동허가 신청을 위한 대기기간 180일 규정도 적용받지 않아 30일내에 노동허가를 받는다.

연방정부가 1억 달러를 지원했다지만 뉴욕시장실에 의하면 난민 신청자 위기에 따른 지출이 이번 회계연도에만 약 50억 달러, 앞으로 3년간 뉴욕행 난민신청자가 계속 늘어날 경우 최대 120억 달러까지 지출이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뉴욕시는 난민문제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애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미국행 이민 희망자들을 말리겠다고 출장을 갔다. 멕시코,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 중남미 3개국에 가서 이민자보호소를 방문하고는 정작 필요한 한마디 말도 못하고 돌아왔다.

그렇다면 뉴욕 시민들은 어찌 살고 있는가? 다락같이 오른 물가상승에 생필품 구입도 만만찮다. 타켓이나 월그린 진열장에는 쇠사슬이나 자물통이 달려있다. 타이레놀 같은 상비약, 치약, 비누, 세제 등등 생계형 소매 절도가 늘어난 것이다.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니 식당의 밥값도 덩달아 올라가 점심 먹기가 부담스런 직장인들도 많다.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코스트코에 가면 푸드코트에서 1985년 출시된 1.5달러짜리 핫도그와 소다 콤보를 사먹는 것이 별미였었다. 물가상승률과 상관없이 예전 가격에 용량과 크기가 동일한 치킨 베이크 3.99달러, 로티세리 치킨 샐러드 6.99달러 등등이 한 끼, 두끼 식사로도 훌륭하다.

코스트코의 저가고수정책은 고객 유치에도 효과 있다는데 푸드코트에는 한 끼 먹기가 버거운, 코비드19 전보다 5배 정도 사람들이 늘 기다리고 있어서 줄 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1년이상 핫도그를 못먹고 있다.

얼마 전 사이먼 전 월마트 CEO는 미 소비자들이 10년 만에 처음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 정치 양극화, 학자금 대출 상환에 이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요즘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까지 새로운 긴장상태가 소비자들에게 각종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시는 지금, 맨몸으로 온 이들을 수용하고 적절히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과 난민 유입으로 인한 치안 불안과 더불어 먹고살기 힘든 뉴욕시민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눠지고 있다. 헌 옷을 뒤지는 이들이 불쌍하고, 물가고에 시달리는 뉴욕시민도 딱하다. 그야말로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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