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제발 멈춤의 시간을 가져라”

2023-09-18 (월) 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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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서식하는 스프링복은 어처구니없이 미련하게 죽는다. 이것들은 초원에서 풀을 뜯어 먹다가 풀이 조금 적어지면 불안한 군중심리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앞에 있는 풀을 먼저 차지하려고 서로 다투며 앞서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면 함께 있던 거대한 무리가 연쇄자극을 받고 흥분되어 너도 나도 그 경쟁에 뛰어든다. 그리고 정신없이 내달린다. 달리다가 절벽을 만나면 그 자리에 멈추어 서야 하는데 그 때는 이미 늦었다. 뒤에서 벌떼처럼 쫓아오는 동료들이 밀어붙이는 힘 때문에 절벽으로 떠밀려서 다 몰사하고 마는 것이다. 멈춤을 모르고 달리기만 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꼭 스프링복을 닮았다. 스프링복처럼 앞만 바라보고 달리는 현대인이여 제발 멈춤의 시간을 가져라” (김창만의 ‘포도나무 리더십’ 중에서)

사울의 시작은 누가보아도 훌륭했다.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선택된 영예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자만하지 않았다. 사울은 어떤 적과 싸우든지 용감했고 겸손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갈수록 사울은 첫 모습을 잃었다. 사울은 속사포 같은 성격과 우월감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변질되었다.
사울의 만년은 다윗을 질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증오와 미움과 폭력을 휘두르는 거친 삶을 살았다. 자신을 인격적으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던 사울은 결국 하나님께 불순종을 저질렀고 오랫동안 다윗을 시기하는 삶을 살다가 비참한 생을 맞이했다.
다윗도 사울처럼 왕의 신분이었지만 첫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가 맡은 첫 일은 궁전에서 나쁜 왕을 섬기는 일이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초기 20년 동안은 왕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고난과 수모를 견디며 묵묵히 살았다. 심지어는 사울이 죽고 난 후에도 헤브론에서 7년 동안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 사울의 삶에서는 덜 익은 풋과일 냄새가 난다. 다윗에게서는 잘 익은 포도 열매처럼 완숙미가 흐른다.
멈춤의 시간이란 시시때때로 그 자리에 잠시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는 것이다. 잠깐 세상의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독대하는 것이다. 소란하고 분주한 직선의 생활을 잠깐 멈추고 혼자 조용히 앉아 자신을 더듬어 보고, 내면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곡선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다. 장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마라톤 경주다. 인생은 스피드와 추진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간을 기다림과 인내와 기도로 사는 것이 인생이다. 이즈학 펄만은 말했다. “최선을 다한 후의 침묵은 경외와 감동을 일으킨다.”

멈춤의 그 시간이 잠깐의 묵상의 시간이어도 좋고, 성경 읽기의 시간이어도 좋다. 또 독서의 시간이어도 좋고, 아니면 그냥 홀로 걷는 산책의 시간이어도 무방하다. 아무튼 바쁘게 달려가던 길에서 잠깐 멈추어 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는 새 사람이 될 수 있다.

시편에만 71번 나오는 ‘셀라(Selah)’라는 단어는 ‘잠깐 멈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만일 시편에 ‘셀라’가 없다면 어떨까. 물을 떠난 물고기처럼 생기가 없고 무기력할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셀라’가 없는 인생은 무기력하고 무미건조하다. 생동감이나 새로운 도약을 위한 활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신학자 맥킨토시는 말했다. “침묵은 우리의 영혼을 일으켜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며, 하나님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며, 잠잠히 기다리게 만든다.” 누가 영웅인가. 멈춤의 미학을 터득한 사람이다.

<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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