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요란한 빈수레

2023-08-02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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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이 있다. 실속 없는 사람이나 조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즉, 속이 깊은 언행을 하지 않고 겉으로만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을 한심하다고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할까.

빈수레란 원래 묵직한 물건을 실은 수레보다 더 요란한 소리를 내는 법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실력이 있는데도 겸손하고 겸양이 있는 사람은 묵직한 짐을 싣고 가는 수레처럼 소리가 시끄럽게 나지 않는다.

현대사회에서는 아무런 실속이 없는 사람이 표면적으로 더 떠들어대는 상황을 예전보다 더 많이 보게 된다. 이유는 아무래도 페이스북이네,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SNS에서 더 생생하고 요란하게 보여주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생존경쟁의 덕목이 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통령이 해외 순방중에 정상회담이라도 할 것 같으면, 야당은 의례히 특별한 성과 없는 ‘요란한 빈수레'에 불과하다며 일제히 맹비난을 쏟아 붓는 것이 이미 공식화되어 있다. ‘퍼주기 외교’니 ‘실속도 못 챙겨 왔다’는 등 하고 말이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유교의 보여주기식 문화가 현대까지 이어져오면서 한국 사람들을 가장 잘 묘사하는 말 중에 ‘허장성세(虛張聲勢)’란 사자성어가 있다. 실력 또는 실속도 없으면서 불필요한 허세나 허풍을 떠는 모습을 일컬음이다.

다행히도 미국에 온지 오래된 사람들일수록 대체로 미국문화의 실리주의, 실용주의가 몸에 배어 있다. 최근 한국을 자주 방문하고 돌아온 한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한국처럼 허장성세가 지배적인 나라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이들은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 목소리만 커서 주인공 행세를 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고 혀들을 찬다. 진짜 잘하는 사람들은 구석구석에 넘치는데 공연히 허세를 부리면서 자기 몸보다 큰 옷을 입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 안쓰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내공이 적은 사람이 자기 능력에 맞지 않은 자리에서 일을 해보면 실제로 별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곤 하는 게 사실이다.

뉴욕한인사회도 지난 4개월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속에서 한인회장 선거라는 거사를 치렀다. 누구나 자유로이 참여해 내가 원하는 후보를 내 손으로 직접 뽑는 매우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거가 잘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선거로 인해 분열된 점, 불미스러운 후유증도 남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진통 속에서 출범한 제38대 뉴욕한인회는 허장성세같은, 요란한 빈수레가 되면 안 될 것이다.

이제 뉴욕한인회는 분열된 한인사회를 하나로 묶고 체재도 새롭게 정비해야 하며, 이 것 저 것 계획한 바대로, 공약한 그대로 할 일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가다 보면 험난한 준령도 있고 암초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끝까지 순조로운 항해, 결실 있는 조직이 되길 바랄 뿐이다.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선진적인 발명중의 하나이다. 문제는 그 민의를 구현해낼 팀이나 조직이 경험 부족으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는 체하고 오히려 더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점이다. 만의 하나 진전된 소식은 잘 들리지 않고 역부족인 사람들의 울타리치기 소문만 나온다면 그 수레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한인들이 많을 것이다.

리더는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들을 준비가 돼있어야 조직의 성공을 기할 수 있다. 정치권만 봐도 민의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인이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 법이다. 늘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리더는 수레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면 서둘러 정신을 가다듬고 수레 안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더 듣겠습니다” 38대 뉴욕한인회 수장이 된 김광석 회장의 이 케치프레이즈는 앞으로도 계속 꼭 필요한 실제 슬로건이 되었으면 한다. 요란한 빈수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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