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앙에세이/ 산은 산, 물은 물

2023-07-31 (월) 홍효진/ 뉴저지 보리사 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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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은 데카르트 말로 알려졌는데, 기원 전 4세기에 활동해 지금도 여전히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텔레스가 그런 말을 했다. 기원 후 4,5세기에 활동한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의미인 ‘Cogito, ergo sum’은 데카르트가 한 말로 그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으리라.
“산은 산, 물은 물”이란 말은 중국의 어느 고승이 한 말로 선종에서는 잘 알려진 말이지만, 성철 큰스님이 한 말로 우리에게는 유명하다. 그걸 보면 누가 처음 했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에 의해 유명해졌느냐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이유는 사회가 그것에 관심을 보이는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리라.

“산은 산 물은 물”이란 말이 유명한 것은 세 살 먹은 아이도 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말인듯 한데, 새기면 새길수록 묘한 매력과 ‘이 뜻의 참 의미가 뭐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여 이것저것 검색을 하도록 한다.

검색한 결과 “내가 전에는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았다가, 나중에 깨침에 들어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게 보았다.’ 지금은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로 보인다.’


그대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으냐? 다르냐?” 라고 12세기에 활동한 청원유신 선사가 한 말로 지금도 화두처럼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산은 산’이란 말이 무엇을 전하려 하는 것인지, 안개산을 헤매듯 애매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학창 시절 학교에 다니며 온갖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살아왔다. 왜 12년 또는 16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그것도 인생의 황금 시간인 청년기에 주입식 공부를 해야만 하는지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부모님이나 사회가 그렇게 하라고 하니 그렇게 해 온 것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공부한 결과로 성공 또는 실패, 평범한 인생으로 살고 있지 아니 한가.

그러니 그와 같은 사회 시스템이 불합리하게 보이지만 사회인 대부분이 불만하지 않듯이 사회가 나에게 열어준 길대로 살아가는 인생을 청원 선사가 맨 처음에 기술한 ‘산은 산, 물은 물’로 보고 사는 세상이라 할 수 있다.

그들 가운데 그와 같은 사회 구조에 의문을 품고 다른 길을 모색하는 이들이 있으니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지?’ 하면서 사회가 열어준 길을 벗어난 이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본의 아니게 시스템에서 낙오를 하여 사회와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격하게 느낄 때가 있다.
나는 대학에 떨어져 재수할 때 그 경험을 했다. 그런 상황이 기존의 사회에 안티 하는 생각이 일어나면서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의심이 생겼고 그 답을 구하고자 노력한다.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완전한 해답이 아닌 안티적인 ‘산은 산이 아닐 뿐 아니라 산은 물’이라는 세계가 답이라 여기니 그런 자들이 안티 사회운동을 주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이다’라는 답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면 ‘산은 다만 산이다’라고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한편 첫 번째 ‘산은 산’에 의심을 품고 출발해 ‘산은 다만 산’이란 결론에 이르렀다면 그들은 같은 듯한데 ‘다만’ 이란 말이 들어가 있듯이 처음과는 비슷하지만 그 안에는 반전에 또 반전으로 매우 성숙하고 깊어진 게 틀림없어 보인다.

산은 산이 아닌 것 같다고 보는 자들이 있어 사회를 벗어난 길을 걸어간 자들 가운데 마침내 산은 다만 산이다인 경지에 이르러 세상에 다시 나온 분들 가운데 우리가 잘 아는 예수나 석가모니가 계신다.

지금 사회는 혼란스럽다. 전쟁이나 질병, 그전과는 다른 엄청난 피해를 일으키는 자연재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 그 속에 사는 우리는 공포와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럴 때 ‘물은 다만 물일 뿐’이라 깨친 분이 나타나 사회에 빛이나 소금이 되어야 할 터인데 거짓 깨친자들이 나타나 오히려 사회를 더욱 오염시키고 있다.

봄에는 예수 부활절이 있고 석가 오신 날이 있다. 지금 사회는 석가나 예수처럼 물질보다 마음을 치료해 줄 성인이 간절히 필요한 때인데, 아직 여명이 오지 않은 무명의 새벽처럼 어둡기만 하다.
의인은 어디쯤 오고 계신가.
홍효진 / 뉴저지 보리사 신도

<홍효진/ 뉴저지 보리사 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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