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무너진 한국교권

2023-07-26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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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한 아이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교사는 그 존재가 바닥에 떨어진지 이미 오래전, 교권의 추락이 교사들을 극단으로 내몰고 있다.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 사건으로 전국의 교사들이 분노하는 가운데 현재 이 학교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화환과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숨진 교사는 생전에 한 학부모로부터 수십통의 전화를 받고 매우 힘들어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이 교사가 학급 부모들에게 평소 보낸 편지가 공개돼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귀한 아이들을 믿고 맡겨주시고 아이의 학교생활을 늘 지지해주셨음에 담임교사로서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학부모님들께서 든든히 계셔주신 덕분”이고 “착한 아이들 감사해”라는 표현도 잊지 않고 덧붙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보면 이 교사는 교사로서 남다른 자긍심을 깊이 느끼면서 생활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이들의 자긍심을 갉아먹는 학부모들의 갑질 등에 의해 한국은 자살로 내몰리는 교사들이 많다고 한다. 최근 4년간 73명의 교사가 자살했다는 통계도 있다. 또 교내에서 동료나 선배 교사의 괴롭힘에, 혹은 학교측의 과도한 업무 분담을 못 이겨 자살했다는 의혹 제기도 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도 아이 부모의 끈질긴 갑질을 참다못해 자살한 사건도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교사가 어떤 이유로든 고발을 당하면 범죄 여부를 떠나 우선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만으로 직위 해제되기 일쑤다. 교사가 강하게 꾸짖었다는 이유로도 막말로 인한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사례도 있다.

베테랑 교사도 학부모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한 교사가 교과서에 나오는 장면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과정에서 한 학생에게 까치발로 걷도록 한 것이 아동학대로 간주된 경우도 있다.

한 교장에 따르면 어떤 이유로든 학생과 학부모 앞에서 머리 숙이고 사과하는 교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30년 교직생활동안 처음 겪는 일들이 요즘 너무 자주 벌어지고 있다는 것.

학부모들이 사소한 일들로 제기하는 아동학대 고발을 제어하고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사실상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학생들의 싸움을 말려도 아동학대로 고소당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현재 한국은 전국의 교사중 최소 1200명이 고소 또는 형사고발 당한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숫자에 0이 하나 더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란다.

미국에도 올바르지 못한 교사들이 있긴 있다. 학생과 성관계를 했다든지 구타를 했다든지 하는 경우도 종종 뉴스에서 보게 된다. 그러나 한국처럼 무분별하게 학부모들에게 갑질을 당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는 한국보다 오히려 교사 인권이 더욱 존중되고 있는 느낌이다.


학생에게 폭행을 당해도 ‘아동학대’라는 꼬리표를 달기 싫어서 그냥 맞고만 있어야 된다는 현실이 가혹하다. 요즘은 학생들의 뺨을 신고 있던 신발로 때리던 시절의 야만성을 지닌 교사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인성과 생활지도를 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점도 분명 감안을 해야 한다.

교사란 직책은 21세기에 몇 안 남은 정신적 3D 직종임엔 틀림이 없다. 교사들에게 교내 훈육에 대해서는 면책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나마 합리적이고 균형잡힌 미국 교사들과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한인 자녀들은 축복받았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 교사들은 그래도 활짝 웃는 미소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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