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 소송에 의한 사회정책 변경

2023-07-06 (목) 최형무/전 저널리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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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정치가들이 다루지 못하는 사회 정책적 문제를 소송을 통해 이루어 나가는 여러 사례가 있다. 그 중 흡연으로 인한 건강문제가 역사적인 사례를 보여 준다.
1950년대부터 담배가 흡연자들에게 폐암이나 심장병을 야기해 건강상의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미국의 주요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40년간 800여 건의 피해자 소송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진행되었으나 피해자측에서 단 한 건의 소송에서도 이기지 못했다. 법원에서 피해자인 원고측에서 흡연이 직접적으로 질병을 야기했다는 인과관계를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1980년대부터 담배가 폐암과 같은 심각한 건강상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과학적 데이터들이 수립되었다. 그러자 담배회사들은 담배를 흡연한 사람들 자신들의 행동으로 병이 생긴 것이니 자신들도 책임이 있다는 ‘기여 과실’ 이론을 내세워 담배회사의 책임을 부정했다.


그 후 주요 담배회사에서 내부적으로 흡연이 폐암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피해자들에 숨겼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회적인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또 10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판매 마켓팅 광고전략이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담배의 중독성으로 청소년 때부터 시작된 흡연은 평생을 가는 건강의 위협이 될 수 있다.
1998년 미국의 4대 담배회사들이 46개주 검찰총장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극적인 타결합의에 이르는 이 분야의 이정표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향후 25년간 2,000억 달러의 피해자 배상을 해 줄 뿐 아니라, 흡연반대를 주창하는 그룹들에 기금을 조성하고 사건 관련 문서들을 공적 보관소에서 보관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흡연 폐해로 야기된 각 주의 의료 비용을 지불하고, 문제가 된 마켓팅 방법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1950년대 이후 미국에서 2,000만 명 이상이 흡연으로 사망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정치인들이 흡연 문제에 대해 시의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수많은 인명을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국민들이 입는 피해를 명백히 알면서도 정책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또 하나의 예로 총기 사건을 들 수 있다. 미국에서 총기에 의한 범죄와 자살, 사고 등으로 매년 4만명 이상이 사망한다.

미 연방의회는 2005년 총기 범죄와 관련, 총기제조 회사에 면책을 부여하는 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총기 사건 범죄의 피해자나 유족들이 총기업체를 상대로 소송해서 오랜 시간과 노력들을 들였으나 패배하는 사건들이 일어 났다.

이 법에도 소송을 허용하는 예외규정들이 있다. 많은 주에서 연방법과 비슷한 총기회사 면소법들을 제정했으나, 최근 몇 개주에서는 소송을 허용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2019년 대법원은 2012년 일어난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사건에서 사망 피해자 유족들이 레밍톤 총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진행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총기회사의 마켓팅 방법 등을 근거로 해 소송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 소송에 재판까지 가서 결판이 나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뉴질랜드의 경우 2019년 백인 우월주의자가 회교신자 51명을 반자동소총으로 살해한 사건이 일어난 후 수주일 안에 반자동소총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또한 추가조치를 연구하기 위한 위원회도 설치했다. 이같은 법이 의회에서 119대 1의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고 한다.

근년에 미국 정치에서 보이는 극심한 파당 현상으로 정말 한시가 중요한 정책 안건들에 대해 정치가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때 그때마다 소송에 의존해야 한다면 무섭게 변하는 현대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공룡과 같은 존재가 될까 걱정스럽다면 기우일까.

<최형무/전 저널리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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