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 6월이 오면

2023-06-01 (목) 최형무/전 저널리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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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올 때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기념하고 생각나는 일들이 있다. 우리들의 삶, 특히 전쟁이나 국가의 존망과 같은 역사의 격변기에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 일어나는 크고 작은 풍랑들이 개인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6월은 여름이 성큼 다가오는 싱그럽고 열정적인 계절이고, 특히 결혼식이 많이 치러 지는 달이다. 6월이 로마신화에서 결혼의 여신인 유노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에서 이름을 따왔기 때문에 6월에 결혼하면 운이 따라 잘 살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6월 화창한 날에 아내와 결혼했다.

6월에는 또한, 1987년의 6월 민주 항쟁으로 대한민국이 민주 국가로 굳게 서는 초석을 쌓았다. 그 전까지 있었던 체육관의 가짜 선거가 아닌, 국민이 직접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가 부활되었고, 국가권력 기관에서 정치적 반대자들에 자행되던 고문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 후 나라가 크게 발전하여 이제 세계적으로도 인정하는 경제력을 가진 나라 문화적으로도 알아 주는 나라가 되었다.
6월에는 또 어머니께서 하늘 나라에 가셨다. 남기신 수필집에 평생 살아온 일들을 회고했는데, 이중 6.25 전쟁에 관한 회고의 글들이 있었다. 개인의 삶과 역사의 수레바퀴가 끊을래야 끊을 수 없이 얽혀 돌아간다는 것을 보게 된다.

6월에 일어난 동족상잔의 전쟁은 수도 없는 사람들에 치유하기 힘든 깊은 상처들을 남겼다.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아침에 소련 스탈린의 허락하에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이 3년 1개월동안 계속되며 300만 명이 사망했고, 학자들에 따르면 전체 사망자중 민간인 사망자 수가 적어도 과반수에서 70퍼센트까지 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 전투 이외에도 양측의 학살과 굶주림, 질병으로 죽어 갔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고,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생겨났다.

어머니의 전쟁의 기억에 관한 글에서 두어 가지가 특별히 깊은 인상을 주었다. 하나는 어머니께서 젊디젊은 20대의 나이에 피난지에서 서울 수복으로 돌아온 후 북에 포로가 되어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끌려 갈 뻔했다가 갓난아이 때문에 누군가가 어머니를 풀어 준 것. 생후 몇 달 밖에 안됐던 나도 함께 끌려갔으면 북한 땅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고, 우리 가족도 1,000만 이산가족 중의 하나로 남과 북이 갈려 눈물 속에 가족을 그리워하는 뼈아픈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운명의 길은 때로는 우리 자신들이 통제 할 수 없는 힘에 따라 결정된다.

또 하나는 어머니께서 6.25 직후 피난 갔던 양평에서 시고모댁에 갔다가, 물을 얻으러 온 나이가 많아야 열여섯을 넘지 않았을 것 같은 아이같은 북한군 병사의 모습. 집 앞 개울가에서 엄마가 그리운지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시고모님의 둘째 아들은 고등학생인데 (한국군의) 군인으로 징병됐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남과 북에서 서로 갓 자라나는 새싹들을 끌어내어” 굶기고 죽이고 하는 전쟁을 한탄하셨다.

같은 언어와 역사를 가진 동포이지만, 종전후 70년이 지난 지금도 남과 북이 상호 공포와 불신의 장벽을 갖고 살고 있다. 국제 정치에서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데, 우리가 서로를 영원한 적처럼 간주하며 살고 있는 것 같은 현실이 가슴아프다.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 속에서도 기적을 이루시는 창조주께서 우리 민족을 돌아 보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기원한다.

<최형무/전 저널리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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