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리질리언트 리더십

2023-04-12 (수) 여주영 고문
크게 작게
한국에서 툭하면 정치 뉴스에 등장하는 용어중에 '비대위'라는 말이 있다. 비상대책위원회라는 단어를 줄여서 부르는 용어이다. 수습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꾸려지는 임시적인 조직이다. 어디든 비대위가 남발되는 사회라면 그곳은 분명 잘 돌아가는 사회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판을 보면 정당의 대표가 선거 패배 등의 이유로 모든 책임을 진다며 임기가 끝나기 전에 물러나는 경우, 구성하는 당 지도부를 일명 '비대위'라고 부른다. 또 어느 조직에서는 정상으로 되돌린다는 의미의 ‘정상위’, 즉 정상위원회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런 용어들을 쓰는 조직이나 사회는 별로 바람직한 곳이라고는 볼 수 없다. 경험 많은 성인들로 이뤄진 집단의 경우 사실상 부끄러운 일이다.


비대위와 관련해 운영되는 규범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비대위 설치와동시 기존의 조직은 해산되고 기존의 대표 및 임원들의 지위와 권한도 상실된다’라는 내용이다. 비대위의 구성 이유는 더는 기존의 방식대로 상황을 마무리할 수 없기 때문에 새 판을 짜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시작을 도모함에 있을 것이다.

제38대 뉴욕한인회장 선거가 한바탕 진통을 겪고 모든 절차가 일단 봉합돼 새로운 바람이 불까 기대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답답함을 주고 있다. 하도 지구촌이 인터넷으로 엮여 있고, 수시로 비행기를 타고 오가면서 동서가 하나로 묶여서일까? 뉴욕도 질새라 이번 한인회장 선거는 한국의 여의도 정치판을 방불케 한다.

이제 뉴욕한인회장 선거가 조속히 다시 치러져 새 부대를 꾸리기 위해서는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는 역대회장단의 적극적인 활동이 시급하다. 뉴욕한인회장의 임기가 4월말로 끝나는데 회장석을 무작정 비워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역대회장들과 각계 단체 대표 및 원로들이 한인커뮤니티가 얼마나 리질리언트(resilient)한지, 즉 쉽게 무너지지 않는 질긴 생명력의 커뮤니티인지 여부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역대회장단은 한인회 위기에 신속히 대응하고 당면한 충격으로부터 조속히 빠져나올 수 있게 해결책 준비를 위한 특단의 의사 결정 구조이다.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이 바로 리질리언트 리더십이다. 리질리언트 리더들은 커뮤니티 구성원들과 진심으로 의견을 같이 하는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세계 정상급인 딜로이트 컨설팅회사는 COVID-19 위기 극복을 위해 리질리언트라는 핵심 '딜로이트 프레임워크'라는 대응 절차를 만들었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대응(Respond), 회복(Recover), 그리고 재도약(Thrive)의 3가지 단계를 잘 밟아가야 역전승이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과연 이번 사태 해결에 앞장선 역대회장단의 역할이 마무리에 결정적이고도 합리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최소한 불화와 잡음의 원인을 제공한 자들이 다시 나선다거나 혹은 뒤에 숨어서 영향력을 끼치려는 전근대적인 행위를 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다행히 정상화에 앞장선 역대회장단이 8일 가진 긴급회의에서 5월1일부로 비대위를 꾸려 빠른 시일안에 회칙을 개정하여 제38대 회장을 선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회칙은 전면이 아니라 우선 문제가 된 후보자격에 대한 원포인트 조항 개정이다. 그리고 선거까지 3개월안에 다 끝낸다면 8월1일까지는 무난히 새집행부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한인회장 선거는 백두혈통을 뽑는 선거가 아니다. 누구나 봉사하고 싶은 사람, 능력있는 한인은 출마 자격이 있다. 뉴욕한인회는 50만 뉴욕한인의 우산이다. 조만간 새집행부 출범, 한인회 정상화는 이제 곧 역대회장들로 꾸려질 비대위의 손에 달렸다.

<여주영 고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