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자신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

2023-03-03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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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8일은 제115회 세계여성의 날이다.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여성노동자 국제컨퍼런스에서 클라라 제트킨의 제안으로 세계여성의 날을 정하게 되었다. 3월8일은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평화’를 내세우며 대규모 파업시위를 시작한 날이었다.

올해 세계여성의 날 글로벌 캠페인 주제는 ‘공평함을 포용하자’는 의미의 #EmbraceEquity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3월 한달을 여성의 달로 지정하고 있다.
그런데 3월8일이 무슨 날인지 아는 한인여성들이 얼마나 있을까싶다. 새삼 가정에서, 사회에서 여성의 자리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먼저 2022년 BBC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의 면면을 살펴본다.
그래미상을 휩쓸며 각종 기록을 경신한 수퍼스타 빌리 아이리시, 아동과 시민의 정신건강 지원에 주력하는 올레나 젤렌스카 우크라이나 영부인, 러시아 팝의 여왕으로 최근 자신의 인스타 그램 계정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한 알라 푸가체바, 2006년 미투운동을 창시한 미국의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 ‘아프리카 여성의 성생활’을 쓴 가나 출신 작가 나나 다르코아 세키아마,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날 부문 수상작인 소설 ‘모래의 무덤’ 을 쓴 인도 작가 기탄잘리 슈리 등등이다.


“지난 10년 동안 화상 및 산성 테러 생존자에 대한 사회의 태도가 바뀌었다. 나는 내가 미스 월드나 미스 유니버스 우승자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자신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한, 나는 아름답다.” (자왈레: 2000년 스네하 자왈레의 부모가 남편이 지참금 인상 요구를 거절하자 남편은 등유로 자왈레에게 불을 붙였다. 남편이 떠난 후 자왈레는 얼굴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타로술사와 사회복지사로 일한다.)

“더 많은 여성 지도자가 필요하다. 여성은 언제나 무릎이 아닌 두 발로 서야 한다.” (에바 코파: 정책과 투자를 통한 여권신장을 목표로 한 여성인권계획안을 발표한 볼리비아 정치인)

“집, 도로, 발전소, 병원, 그리고 때로 생명은 부서지고 사라졌지만 우리의 꿈, 희망, 믿음은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으며 또 강인하다.(이리나 콘드라토바: 우크라이나 소아과 의사로 심한 폭격에도 하르키우 내 분만센터에서 임산부, 신생아, 산모를 지속적으로 돌보고 있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생존한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우리는 두려움에 의해 통제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야 리버스: 심리학자. 덴마크 의료진이 자치령인 그린란드 이누이트 원주민을 대상으로 시행한 피임 캠페인으로 13살 때 비자발적으로 자궁내 피임장치 삽입시술을 받았다. 여성 피해자 돕기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그 외 수화통역사, 장애인권리 운동가, 자원봉사자, 의사, 인권운동가, 무용가, 배우, 패션디자이너, 기후기업가, 정치인, 사회운동가 등등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여성의 권리, 폭력, 사회적 편견과 차별, 부당한 대우에 맞서 치열하게 살고 있다.

열악한 환경이나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에서도 꿋꿋이 살고 있는 여성들, 이들 100명 외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이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오늘 하루도 자신의 이름으로 살기 위해서 얼마나 고군분투 하는 지 모른다.

당당하게 살기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당하고 불평등한 일에 맞서자니 겁이 나고 용기가 없다. 주눅 든 자신에 대한 열등감, 우울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럴 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 자아의 독립을 실현 하는 여성들을 롤 모델로 삼게 된다.

최근에 막을 내린 한국 TV드라마 ‘대행사’는 여성(고아인역 이보영)이 능력 하나로 회사의 유리천정을 깨는 이야기다. 결국 VC기획 대표자리에 오르지만 1년후 독립대행사를 차려 독립한다. 얼마후 독립할 것을 뭐 하러 그렇게 기를 쓰고 싸웠지 하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마지막회 서브타이틀 ‘바람이 불지 않는데 노를 저어 나아간다’는 카피는 마음에 든다.

여성의 달을 맞아 자신이 진정한 주인이고자 하는 여성, 자신의 이름으로 사는 여성에게 박수를 보낸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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