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늙어가는 것은 읽어가는 것

2023-02-26 (일) 09:37:48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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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세상의 학교에서 인생학과를 전공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배움의 연속인 것이다.
젊어서 배워야 하고 늙어도 알아야할 것은 알아야 한다. 늙어간다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고, 또 다른 기회를 찾는 것이다. 늙어갈수록 약하고 뒷걸음치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세월의 긴 강물에 인생의 배를 오래 탄 사람으로서 농익은 깊은 맛과 위기속에서의 여유와 갈등속에서도 편암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는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하느니라(잠언16:21)

젊을 때는 보지 못했는데 세월이 갈수록 자세히 보이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한문을 배울 때 그 한문이 무엇인지 모르다가 알고 읽는 것처럼 늙어가면서 몰랐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것인지, 왜 그런지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들이 바로 시간과 사람과 장소의 언어들이다. 누가 말한 것처럼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 때에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과 같이 이제 복권을 긁어가면서 숨겨지고 가려졌던 시간과 사람과 장소가 이제 읽어야 한다.

시간은 금은 아니지만 정말 금인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한 시간이 금쪽같은데 왜 그 때에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빌고 빌었던지 모른다. 시간은 언제나 아름다웠고 소중했던 것들이었다. 지난 시간도 그렇고 지금 살아있는 이 시간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이다.
그래서 날마다 “Oh Wonderful”라고 시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울고 웃었던 시간들, 느리고 빨랐던 시간들, 지루하고 재미있던 시간들은 다 모두 나의 인생을 채운 시간들이었다.


어떤 시간은 지우고 싶었지만 그 시간들도 나의 인생이라고 읽어가는 순간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웠던 가를 찾게 된다.
그리고 시간과 함께 했던 그 사람들! 가족은 물론 소꿉친구들, 동창생들, 사랑했던 사람들, 미워했던 사람들과 함께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떠난 사람들도 다 귀하고 귀한 존재들이었다. 어떤 점에서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악한 악마일 수 있고 천사일 수 있다. 사람 때문에 기뻐하고 사람 때문에 절규했던 것들을 떠올릴 때 우리의 인생은 사람이 전부였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착하다고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악하고, 내가 악하다고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천사였는가를 읽어갈 때 비로서 나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나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감사를 품고,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은 나를 깨닫게 해준 사람들이라고 읽어갈 때 그 사람들을 향해 “Oh Beautiful”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도 결국 아름다운 삶인 것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힘들고 어려운 삶의 현장이고 장소이다. 날마다 생사가 오고 가고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소식을 접하는 생존경쟁과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의 땅에 살고 있다.

언제라도 편안한 세상이 되어 본 적이 없다. 늘 불경기, 전쟁, 가난, 분리, 대립, 싸움, 실패, 미움이 공존하는 그런 세상이다.
이제 이런 세상의 숲을 지나와 조용히 뒤를 돌아보며 또 앞을 바라보는 이 때에 이 세상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은 그래도 나를 위해 준비된 인생의 경주장이었다고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달렸던지 내가 달려운 그 삶의 현장, 장소는 행복이고 기쁨이었다고 읽어야 한다. 후회와 실패감으로 입을 꾹다문 그런 모습이 아니라 마라톤 경기에서 일등으로 들어온 선수가 보여주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깊게 웃는 것처럼 늘 어느 때든지 조용히 자기를 칭찬하며 자신의 삶이 행복이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늙어가는 것은 곧 읽어가는 것이다. 시간도 읽고, 사람도 읽고, 살아왔던 삶의 현장 장소도 읽어가면서 Wonderful, Beautiful, and Happy 이라고 되뇌임을 할 때 그 누가 그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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