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잊혀진 영웅들 (2)

2023-02-01 (수) 이상민/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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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9퍼센트밖에 안되는 확율을 이기고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대단한 기록을 남겼다. 우리는 그 외에도 많은 월드컵 기록을 갖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4강에 오른 국가이고 무려 열한 번 본선에 참가했으며 지난 10회 대회 연속 본선행에 성공했다. 안타깝지만 월드컵 역사상 최다 득점차 패배 국가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첫 출전이었던 1954년 스위스 대회였는데 이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1954년 아시아 최종 예선은 한일전이었다. Away 게임은 일본에서 5:1로 승리한다. 다음 home 게임은 당연히 한국에서 치르는 게 원칙이지만 그렇지 못했다. 반일 감정이 강했던 당시 일본선수들이 한국땅을 밟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결국 home 게임도 일본에서 열렸고 2:2로 비긴 우리는 월드컵 본선을 향한다. 주권국가로서는 처음 월드컵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나라가 됐다.

얼마나 가난하던 시절인가? 국가 예산이 없어 경비 보조를 별로 받지 못했고 공공기부금을 모아 최소한의 자금을 마련했다. 일본까지는 전원이 미군수송기를 얻어 타고 갔는데 그 다음 홍콩행 항공권을 10장밖에 구하지 못했다. 마침 홍콩을 가려던 영국의 신혼부부가 쩔쩔매는 대표팀을 발견한다.


“월드컵에 비행기표가 없어서 못 간다는 게 말이나 되냐.”라며 본인들의 티켓을 양보해줬다. 이들의 도움으로 주전선수 11명과 김용식 감독이 1진이 되어 먼저 일본을 떠난다. 다섯 번의 환승과 비행시간 64시간 만에 첫 경기 이틀 전 오후 10시에 스위스에 도착했다. 이미 개막 후였다.

타국 선수들은 이미 한 달 전에 도착해 시차 적응도 하고 호흡도 마친 상태였다. 여독을 풀지도 못한 채 우리 선수들은 유니폼 먼저 손질을 해야 했다. 서툰 바느질과 옷핀으로 등에 번호판을 달았고 축구화를 고쳐 신었다.

첫 게임 상대는 그 해 우승 후보국 헝가리였다. 당시 세계 최고 선수 푸스카스가 속한 나라다. 참고로 헝가리는 이 대회 준우승 국이 된다. 전세계는 20:0 스코어를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처음 12분 동안 골문이 열리지 않자 헝가리 선수들은 당황했다.

시간이 흐르자 여독에 지친 우리 선수들의 다리에 쥐가 났고 네 명은 자리에 주저앉기까지 했다. 이를 보고 관중들은 우리 선수들을 격려하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Final score는 9:0. 모든 나라들이 코리아 정말 잘 싸웠다고 칭찬을 했다.

유효슈팅 수십 개를 막은 골키퍼에게 헝가리 선수들이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줬다고 한다. 그날 밤 골키퍼 홍덕영 선수는 시커멓게 멍든 가슴 통증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터키를 상대로 치른 2차전은 7:0으로 패하고 예선탈락 한다. 늦게 도착한 2진이 기용된 경기였다. 이번이 아니면 언제 국제무대에서 뛸 수 있겠냐며 감독이 후보 선수 전원에게 기회를 줬다고 한다. 멋진 감독이다.

1954년 6월은 해방된 지 9년 됐고 3년 간의 6.25동란을 치르고 휴전한지 11개월 된 시기였다. 최악의 상황에서 아마추어 선수들이 강국 일본을 제치고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낸 것은 기적이었다. 우리가 자랑하는 4강 신화와 16강 그리고, 10회 연속 본선행 진출의 희망은 이들로부터 시작됐다.

최다 득점차 패배는 수치스런 기록이 아니라 명화 한 편 제작될 만한 영광스런 역사다. 자랑스런 선수단 (감독 김용식, 선수 강창기, 김지성, 민병대, 박규정, 박일갑, 박재승, 성낙운, 우상권, 이상의, 이종갑, 정국진, 정남식, 주영광, 최영근, 최정민, 한창화, 함흥철, 홍덕영) 잊혀져선 안 될 영웅들이다.

<이상민/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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