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생각 - 정명 (正名)

2023-01-23 (월) 박치우 커네티컷 거주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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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세상을 평탄하게 사는 것도 쉽지 않아 `행복' 말조차도 보다 평탄하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라고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논어에 `정명(正名)' 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이 적혀있다.

정명을 직역하면 바른 이름인데 이름은 사람들이 각기 갖고 있는 처지, 나라의 사회의 직업의 집안의 항렬 등으로 불려지는 것을 그 사람의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정명(正名)의 뜻은 각자 갖고 있는 이름답게 바르게 살아야 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나라 통치를 위한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통치자답고 한 집안에 부모는 자식에 애정을 가져야 부모답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할 줄을 알아야 자식답고 친구는 남이지만 가족 같고 자기와 이나 해를 가리지 않는 사이가 친구다운 것이고, 사회에 각 분야 종사자들은 그 나름대로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다운 것이다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한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뉴스에서 본 예를 들면 어떤 학부형이 자기의 아이를 선생이 때렸다고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에게 주먹질 한 것은 선생이 선생답지 않고. 학부형은 학부형답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고 보니 다운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사람살기 좋은 곳 같다. 좀 나은 지역은 자국에서도 그렇지만 외국이 좋을 것같아 이민을 가는 사람들도 많다. 어려운 이민을 가서 살아보니 낯선 문화권에서 나이 들수록 고국이 그리워지지만 되돌아 갈 수 없어 평생 외로운 타국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를 보게도 된다. 사람 처지 여하를 막론하고 답고 답지 못한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있는 것 같다.

미국에 와서 산지 20년째 되던 어느 봄날, 처의 언니 두 분이 한국에서 오셨다. 일을 가야 하겠기에 두 분만 집에 있는데 스카티쉬 옆집 이웃이 자기 차에 영어도 못하는 두 분을 모시고 동네 바닷가를 한바퀴 돌아 보여주고 와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그 이웃다움에 놀란 적이 있었다.

답게 보이는 것은 배려(配慮)하는 마음 아닐까. 우리의 생활과 직결된 업종을 대별한 업종의 상업은 값, 생산업은 품질, 의사나 변호사는 성의에서 보인다.
그렇게 보면 사람의 삶의 만족감은 어디 먼 곳에 있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물건을 값싸게 사든지 좋은 품질의 물건을 어디서 발견 한다든지 하면 만족스럽고 또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거나 몸이 불편해 질 때 성의로 도움을 받게 되면 안심할 수 있다.

살면서 배려하는 마음이 소중한데 자기 자신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남에게만 배려하는 마음을 바라기만 하면 배려 받을 곳이 없어진다. 배려 없는 마음은 있음보다 소문이 빠르게 나서 퍼진다.
삶의 도리는 우리 인간들과 같이 사는 모든 생명들 생태를 살펴보면 누가 짓지도 만들지도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B.C. 2,500년 전 공자는 인간성을 누구에게서 사사 받았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스스로 한 인간으로 인간답게 평생 살면서 인간다움이 어떠해야 되는 지를 말하는 것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될 것을 결심한 사람들이 수천 명에 이르렀다.

후에 그 제자들은 논어까지 편찬해서 지금 이 시대에서도 배울 수 있게 된 것은 아마 새가 스스로 살 집을 짓고 새끼들과 사는 그런 자연 생태계를 관찰하면서 인간성을 터득한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본다.

<박치우 커네티컷 거주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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