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 토끼해를 맞이하며

2023-01-19 (목) 성향/뉴저지 원적사 주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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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희망찬 계묘년(癸卯年) 토끼띠의 새해가 시작됐다. 올해 계묘년은 육십갑자(六十甲子)의 마흔째. 천간은 흑색을 상징하기에 검은 토끼의 해이다. 토끼는 우리의 정서 속에 가장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속담이나 동요, 설화 등 우리 문화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토끼의 속성이 농경민족이었던 우리 민족의 정서와 가깝기 때문이다. 토끼는 약하고 선한 동물로 그리고 재빠른 움직임에서 영특한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토끼는 띠를 상징하는 동물 가운데 가장 생기발랄한 동물로, 만물의 성장·번성·풍요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를 보며 평화롭고 풍요로운 이상 세계를 꿈꾸기도 했다.


토끼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이『삼국사기』열전(列傳) 김유신전에 삽입된 「귀토설화(龜兎說話」이다.「귀토설화」는 그 후 「토생전」「별주부전」「토끼전」으로 세상으로 퍼졌는데, 한국의 대표적 판소리계 고전인 판소리「수궁가」로 불리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토끼가 주는 순결함과 평화로움 때문에 일찍이 토끼를 이상향에 사는 동물로 만들어 놓았다. 토끼는 위기 극복에 강한 동물로 지금처럼 혼란하고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 토끼처럼 여러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토끼의 지혜’가 필요하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중국 사마천의『 사기(史記)』 「회음후 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오는 내용으로‘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물고 온 사냥개를 삶는다.’ 이며, 필요할 때 요긴하게 사용하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바로 버린다는 뜻으로 비정한 인간 세상을 꼬집은 말이다.

토끼는 민화나 조각 등에서도 자주 등장할 뿐 아니라 사찰 곳곳에서도 전각·조각·벽화 등을 통해 다양한 토끼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서울 화계사·순천 선암사·김제 금산사·양산 통도사 등이 대표적인 사찰이다. 토끼는 상징적으로 여러 의미를 지닌 동물이지만, 특히 달과 연관되어 달에 살고 있다고 하거나 달 자체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서울 화계사 나한전 벽화에서는 꼬리를 늘어뜨린 백호에게 담뱃대를 전달하는 토끼의 모습이 있고, 통도사 명부전 내벽에는 토끼가 거북이 등에 올라타고 용궁을 향해 가는 장면을 그려져 있다.

사찰에서 나타나는 토끼의 경우, 단순히 토끼 문양이 아니라 밝고 깨끗함을 상징하는 달을 나타내기도 한다. 토끼로써 달을 표현하는 것은 전통 장식 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징적 표현이다.

토영삼굴(兎營三窟)이라는 말이 있다. 이 뜻은‘ 힘이 약한 토끼가 여우나 족제비 등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미리 세 개의 굴을 파놓고 자기의 안전을 위해 몇 가지 안전한 방책을 준비하고 있다.’ 는 뜻으로 앞으로 생길지도 모르는 위험할 때를 준비하고 대비하여 정말 어려운 일이 일어났을 때 잘 피할 수 있다는 지혜와 교훈을 보여준다.

토끼의 귀는 어느 동물보다 몸집에 비해 가장 크고 길다. 이것은 소통과 경청의 상징으로 특히 올해는 커다란 귀로 세상을 잘 듣고 살피며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좋지 않을까 한다.

살아가며 원하는 일들이 뜻하는 데로 좋지 않을 수 있다. 2023년 새해 어려운 상황이 온다면 토끼와 같은 지혜로 영리하고 슬기롭게 이겨 나가길 빈다. 평화와 번영의 상징인 토끼해를 맞아 모두가 복 많이 짓고 복 많이 받는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성향/뉴저지 원적사 주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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