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재난을 극복하는 이웃의 정

2023-01-18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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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희망으로 새 출발을 해야 할 신년 벽두부터 고통에 처한 사람들이 있었다. 캘리포니아 거주 주민들이다. 이들이 사는 최첨단 도시 LA, 샌프란시스코를 포함, 가주지역 전체에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다.

LA 다운타운과 고급주택이 즐비한 베벌리힐스의 유명 연예인들 거주 지역도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강풍과 폭우가 곳곳을 강타해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고, 주민 대피령까지 떨어졌다. 캘리포니아 주민의 90%에 해당하는 3400만명이 영향권에 들어갈 정도였다.

3주째 폭우와 강풍이 이어지고,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인 태평양의 가공할 만한 크기의 수증기가 비로 변해 쏟아졌다니 그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였을지, 주민들의 고통도 얼마나 컸을지 가늠하고도 남는다.


이런 위기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한 이웃의 노력이 눈물겹게 펼쳐진다. 지역의 소방대원들과 용감한 시민들이 고무보트를 이용해 어떻게든 고립된 주민을 구출하기 위해 나선 모습이 TV화면에 속속 비춰졌다.

지난해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화재로 곤욕을 치렀던 캘리포니아가 이번에는 하천이 위험 수위로 치솟으면서 물난리를 겪게된 것이다. 재난 책임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인근 몇 개 도시에 대규모 홍수와 산사태 경보를 내린 것 뿐이다. 그야말로 최악의 사태다. 이런 재난 시기에는 누구라도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구원의 손길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미 동부도 겨울이면 자주 폭설로 곤혹을 치르곤 하지만 올해는 아직까지 큰 사태가 벌어지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린다. 폭우나 홍수, 산사태, 폭설 같은 최악의 자연 재해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이웃들과 평소 얼마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는가다. 속수무책의 경우 말고는 절체절명의 위기시, 이웃의 도움은 소중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 재해만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뉴욕같은 대도시의 경우 가장 큰 재난 상황은 반 아시아계 증오범죄일 수도 있다. 대다수 한인들과 아시안 아메리칸들은 요즘처럼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고 한 목소리로 불안감을 털어놓는다.

길거리나 지하철, 버스 등에서 아시안에 대해 증오심을 가진 불량배들이 갑자기 달려드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오죽해서 뉴욕 경찰이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을 표시한 온라인 범죄 지도를 공개했을까.

뉴욕주 버팔로에서 지난 연말 폭설로 곤경에 처한 한국인 관광객들을 도와준 지역 주민의 훈훈한 소식이 생각난다. 그 주민은 폭설에 빠진 차량을 움직이기 위해 삽을 빌리러 간 한국인 관광객 전원을 집으로 불러들여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구원의 손길을 내민 집주인은 마침 한국 문화에 호감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만약 그 집주인이 평소 한국인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상황에서 생면부지의 이들을 선뜻 도와주었을까.

뉴욕에 오래 살아 보니 인종과 관계없이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다 공존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소수민족인 우리가 평소 이웃들에게 좀 더 가까이 대했다면 우리는 어떤 재난을 겪더라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종전에는 보기 힘들만큼 심한 반 아시안 혐오 감정이나 폭언, 폭행 같은 행동들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살다 보면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이웃 타인종과 벽을 쌓고 우리끼리만 산 것이 아닐까, 타인종도 분명 우리의 이웃이다. “평소 이웃에 베풀지 않으면 자기가 곤궁하게 될 경우 이웃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공자의 이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타인종에게 이제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답이 분명하게 나온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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