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 까치밥’ 인심

2023-01-13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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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30분 정도 직장이 있는 동네를 산책하다보면 사계절 내내 피고 지는 꽃과 나무의 열매를 관찰하게 된다. 지난 가을부터 어느 가정집 뜰에 심어진 감나무를 오가며 눈여겨보게 되었다. 주황색 씨알이 굵어지더니 늦가을이 되면서 마른 나뭇가지에 동글동글한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그런 어느 날 어느새 집주인이 감을 다 땄는지 나무 꼭대기 가지에만 주황색 감이 대여섯 개 남아 있었다.

이른바 ‘ 까치밥 ’이다.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감을 모두 따지 않고 감 몇 개를 나무에 남겨두었다. 혹자는 키가 큰 감나무의 감을 장대로 따기가 힘들어서 결국 다 못 따고 남긴 것이 까치와 다른 새들의 먹잇감이 된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까치밥을 진짜로 새가 와서 먹는 것을 보았다. 새들은 잘 익은 감과 덜 익은 감을 잘 구분한다. 먹다만 감이 반 정도 남겨져 있더니 겨울이 깊어지면서 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 감을 먹던 새들은 어디서 먹이를 찾을까 궁금해졌다. 겨울새들은 메마른 잎사귀 또는 나무 밑에서 씨앗머리를 먹거나 도토리, 너도밤나무 등 견과류에서 음식물을 취하고 휴면 곤충과 유충을 나무껍질 등에서 찾기도 한다. 또 나무껍질 깊숙이 파고들어가 수액을 먹고 나무와 수풀에 남아있는 곡물을 먹기도 한단다.

새들의 겨우살이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먹거리 구하기도 만만찮다. 물론 10년 전부터 세계 경제는 늘 불황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장바구니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졌다.

한국인들은 늘 먹고사는 일에 노심초심 해 왔다. 특히 고려시대부터 조선말기까지 가뭄, 홍수, 보릿고개에 밥 한 끼 먹기가 힘들다보니 아침에 만나면 “식사 하셨어요?”. 하고 물었다. 먹기 위해 살고. 먹기 위해 일한다는 말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졌고 “최고 보약은 밥이다.“라고 했다.

‘밥 한 알이 귀신 열을 쫒는다.“ 며 몸이 쇠약할 때 열량 충분하고 소화가 잘되는 쌀밥을 충분히 먹고 건강을 회복하라고 했으며 고봉밥(밥이 그릇 위로 수북이 올라온 밥, 감투밥, 머슴밥), 소나기밥, 소금밥(반찬이 보잘 것 없는 밥), 소밥(푸성귀밥)이란 용어도 등장했다.

”밥은 먹고 다니냐?“, “나중에 밥 같이 먹자.”, “밥값은 하냐?”, “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한 끼 줍쇼.“(이경규, 강호동 출연 TV 예능프로) 등등 밥과 관련된 속담이나 표현이 수백 개였다.

1980년대 초 일본 조지루시 사의 ‘코끼리 밥솥’, 2,0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는 한국 밥솥이 한인은 물론 타인종에게도 인기최고다. 이렇게 밥솥 인기도가 바뀌더니 최근 또 변화가 왔다, 잘 나가던 대형 용량 밥솥이 줄고 소형 밥솥이 주로 나간다고 한다.

파나소닉은 일본내 전기밥솥 생산을 중단하고 올 상반기에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한다. 인구 감소, 노령화, 쌀 소비 급감이 가장 큰 이유. 또 밥 대신 햇반을 먹는 사람들이 늘고 보니 아예 신혼살림에 밥솥을 사지 않기도 한단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나 집에 머물다보니 활동량이 줄어 두 끼만 먹는 사람이 현저히 늘었다. 물론 콜레스테롤과 혈압, 당뇨 수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탄수화물보다는 신선한 채소를 섭취하자.’며 한끼 밥 양을 반 공기나 3분의 2로 줄이기도 했다.

아무리 물가가 오르고 먹고 살기 힘들어도 조상들이 배고픈 시절, 한갓 미물에게까지 양식을 남겨준 까치밥 인심을 떠올려보자. 뒷마당이 있는 사람은 새 먹이통에 영양가 있는 먹이를 두어 새들이 폭설과 혹독한 겨울을 무사히 넘기게 하는 것도 좋겠다.

세 끼 먹던 것이 두 끼로 줄었다면 그 한 끼를 불우이웃을 위해 남겨두는 것은 어떨까. 따스한 밥 한 끼와 다정한 말 한마디, 원래부터 한국인 고유 정서였다. 미국에 살면서 우리는 어느새 각박해진 인심 따라 까치밥까지 싹 먹어버린 것은 아닐까. 오늘, 당신의 감나무에는 무엇을 남겨둘 것인가.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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