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극단적 선택

2022-12-14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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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선진국 가운데 인구 비례로 가장 많은 수의 국민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무조건 죽으면 정황으로 미루어 자살로 조사를 마무리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정확한 부검도 없이 서둘러 화장을 한다든지 뭔가 자살할 이유도 없어 보이는 사람을 ‘자살’로 결론지어 사건 조사를 종결한 것 같은 내용의 신문 보도도 이따금 보게 된다.

이때 대부분의 언론이 사실 전달을 위해 흔히 쓰는 단어 ‘극단적 선택’은 실제로 그 망자의 죽음이 본인 스스로가 선택한 것으로 아예 결론지어 쓰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살을 가장한 타살은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되는 게 아닐까. 이따금 한국에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대형사건 수사과정에서 관련된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가 너무나 힘든 시간을 겪다보니 웬만해선 생각도 하기 싫고 그냥 쉬고만 싶은 심정들이라 뉴스에서 복잡한 사안을 보면 채널을 돌리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기 짝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후 한국은 연일 내전을 방불케 하는 국론분열 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적폐청산을 해달라는 국민들의 호소만 커져 간다. 한국인들은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대장동 사건같은 권력형 비리가 바로 청산되는 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전직대통령도 감옥에 갈 만큼 청렴한 나라로 전세계 언론에 각인되었기 때문에 대장동 사건은 투명하게 조사해서 뒤에서 조정한 실세 ‘그분’이 대통령이든 최고 권력자든 어느 누구라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보여주면 좋겠다.

대장동 사건의 핵심 쟁점은 천화동인 1호라는 자산관리 회사의 실소유주가 누구냐이다. 대장동 사업에서 이익금 1208억원을 챙겼다는 천화동인은 화천대유라는 모기업이 100% 소유한 회사이다.

또 다른 자회사인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는 본인이 살기 위해서라도 실제 숨은 손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고백할까. 그는 “김만배씨가 350억원의 로비 비용이 든다”고 자백했다 한다. 뒤를 봐주는 대한민국 권력 센터의 7명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얘기했다는 전언도 있다.

대장동 녹취록에는 ‘그분’으로 지목된 사람이 있는데, 조재연 대법관이라는 의혹이 생기자 그는 급히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흔히 그렇듯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를 만난 적도 없고, 금품 등은 당연히 제공받은 적이 없다고 말이다. 또 다른 사건 실무자인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에는 특정 배후 인물을 위해 50억원을 만들어서 빌라를 뇌물로 바친다는 내용도 있다.

검찰 조사에서 밝혀지겠지만 법조계, 정계, 고위공직자들의 검은 커넥션으로 모국 대한민국이 해체되고 있는 것이 소문이 아니라 실제라는 것이다. 부패의 규모가 너무 커서 실체가 드러나면 나라가 휘청거릴지도 모른다고 한다. 때문에 핵심 관계자들 입막음 시도는 너무나 가능해 보인다.

부디 경찰이 그들이 자살당하지 않도록 잘 보호해주면 좋겠다. 나쁜 짓을 했더라도 그들은 끝까지 살아서 진실을 밝혀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최소한 투명한 법치국가의 근간은 남았다고 우리 모두 자위할 수 있지 않을까.

또다시 핵심 관계자들이 조사중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한국은 정말 형편없는 수준의 국가라고 놀림감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래 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이상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장난 같은 결론으로 사건 종결이 안 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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