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서에 조예가 상당한 대학 동창이 근간 장자(莊子) 해설 편을 꾸준히 보내줘서 틈틈이 읽는데, 어제 장자 외편(外篇) 한 구절이 나름 의미가 있어 몇 번을 숙독했다.
외편 20편에 “혼탁한 세상에 살면서 해(害)로움을 피하는 기술”을 말하겠다면서 제 4장에 그 답을 썼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해를 입지 않는다.” 어떤가. 온갖 구설과 입 초사에 오르내리는 까닭은 “나의 드러냄”에서 비롯된다는 장자의 교훈은 익히 우리가 아는 지식이지만 새삼 이 말에 울림이 있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계에 있다거나 사회적 명성을 지닌 환자를 대할 때 의사는 무명의 보통 사람을 대할 때보다 더 긴장한다는 이론으로 VIP증후군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이나 돈 많은 사업가들 또는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분들은 병원에서도 자기를 알아보고 특별하게 취급받기를 원한다. 하여 그런 심리를 이해하고 이용하는 병원은 병실에 특실을 마련한다.
그리고 특실 중에도 훨씬 화려한 VIP 룸을 설치하여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대우를 받으며 생활 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물론 상상할 수 없는 대우에 상응하는 돈을 내야한다.
따지고 보면 웃기는 일 같지만 막상 그런 대우를 받으며 치료를 받는다면 기분은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더 웃기는 일은 그런 “귀하신 분”이 환자가 되어 의사 앞에 나타나면 보통 잘 넘어갈 치료나 수술도 실수를 하게 되고 처방도 틀리게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환자가 누구든 평등한 상황에 있어야 진단도 잘 하고 수술도 더 잘 할 수 있다는 이론인데 설득력이 있다.
“아, 이 분이 그 유명한 재벌 회장이시구나.” “이 양반이 장관이라고? 의원이라고?” “이 배우는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잘생겼군” 그러면서 진료를 시작하면 보통 사람보다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그 마음이 일단 평정심을 자칫 흔들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는 말인데, 아이러니다. 죽을병이 아닌데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 이치가 어디 그런가. 그런 해(害)가 끼어 들 수 있다는 이론도 존재는 하지만 그 반대로 세심한 주의력과 의술의 발휘로 치료가 더 잘 될 수 있다는 결과를 믿고 자기를 드러내려 애를 쓰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유명해지기를 바란다. 특히 이 시대는 이름을 내기에 혈안이 된 풍조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돈도 많이 벌어 풍요롭게 살기를 희망한다. 누가 이런 생각을 비난하리오.
그러나 장자는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이름을 떨치고 산다는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해롭게 하는 길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차라리 조금 덜 유명한 것이 진정한 삶의 본질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 드러냄의 경계가 불분명하긴 하지만 이름을 덜 내기 위해 애를 쓰라는 말이다.
오래 전 유행했던 노래가 있다. “난 바보처럼 살았군요.” 라는 노래다. 물론 그 노래를 부른 가수는 아주 유명해졌지만 우리들 삶이란 조금쯤 바보처럼 사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이름 석 자를 알리고 그 이름에 따라가는 얼굴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면 자기가 자기를 자해(自害)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돌아보면 나 역시 그리 길지 않은 생을 살아오며 바보처럼 산 날들이 많았음을 깨닫는다.
어떤 사람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노라 자신있게 말하지만 나는 정말 후회투성이의 인생이었음을 반추한다. 그렇게 드러내는 삶은 아니었는데도 이렇듯 후회가 절절한데 조금 더 나를 드러냈더라면 내가 서 있는 지점은 어딜까 생각한다.
극작가로 유명한 입센도 말했지. “네가 나설 무대가 아니면 나서지 마라.” 유명해지려다 무명으로 끝나는 게 얼마나 편하고 좋은 일인가를 의미하는 듯하다. 어느새 여름이 가고 있다. 계절도 침묵하며 옷을 갈아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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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