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의인으로 살기

2022-11-25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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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타깃 매장에서 대한항공 승무원 여성이 노숙자의 칼에 찔려 중상을 입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 여성은 9세 소년을 보호하려다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부상을 당한 9세 소년 메디나의 사촌 리젯 몰리나는 메디나를 위한 고펀드미 닷컴 페이지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내 사촌은 등 뒤 어깨를 2차례 찔렸고 25세 여성은 내 사촌의 생명을 구하려고 하다가 가슴을 찔렸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 여승무원의 긴급 수송을 도운 USC 병원의 한 외상전문 간호사도 해당 여승무원이 해당 어린이를 감싸 안다가 여러 군데를 찔리는 피해를 당했다고 말했다 전해진다.

사건당시 용의자는 9~10인치 식칼을 들고 매장 안에서 인종차별적인 언사와 함께 “찔러죽이겠다“고 외치면서 소년과 승무원을 공격했다. 25살 밖에 되지 않은 이 여성은 순간적으로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를 감싸 안은 것이다. 그 모습에 감동의 전율이 온다. 얼마나 용감하고 의로운 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피하기에 급급했거나 공포로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20일에는 콜로라도주 콜로라도스프링스의 성소수자 클럽에서 22세 남성 앤더스 리 올드리치가 손님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해 5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이 사건 현장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범인을 제압한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클럽에 있던 손님으로 범인과 몸싸움을 벌여 쓰러뜨리고 권총을 빼앗은 뒤 경찰이 올 때까지 몸을 고정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범인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범행이 배경이 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모두 도망가기 바쁜데 총격범을 향해 달려가 수십 명의 생명을 구한 이, 우리는 이들을 의인(義人)이라고 한다.

생면부지 남을 구하는 이는 위기상황에서 생각이나 사고 이전에 본능적으로 이를 돕는 행동으로 나선다. 의로움을 추구하는 이는 가난한 이, 약한 이의 편을 들어 자신이 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 않는다.

사람 사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세상을 살만하게 하며 의로운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선행은 다른 이에게 전염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의인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겁 많고 소심하고 약한 자들은 의인이 될 수 없을까?

얼마 전에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작은 도움을 받았다. 그 일은 하루종일 ‘그래, 원래 미국은 이런 나라였지.’ 하는 미국의 미래에 대해 기대하게 만들었다.
지난 10월 중순 센트럴 팍 보트 하우스가 문을 닫는다고 하여 호수가 보이는 창가에서 브런치를 먹으러 몇 번 갔었다, 센트럴 팍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순간적으로 길을 잘못 들어섰다.

방향감각을 잊고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찾고 있는데 옆을 지나던 어떤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80대 노인으로 언덕길을 오르는 손녀의 자전거를 밀어주는 중이었다.
우리에게 먼저 말을 붙여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고는 다시 손녀의 자전거를 뒤에서 밀면서 사라져 갔다.

나 몰라라 하고 내 갈 길 가지 않고 친절하고 다정하게 낯선 아시안에게 길을 알려주는 백인 할아버지, 그 손녀는 얼마나 배려심깊고 친절한 사람으로 자랄 것인가.
어렵거나 곤란한 처지에 놓인 이에게 간단한 도움을 주는 것부터 남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양보하고 배려하는 사람들,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지 않아도 이렇게 의인이 될 수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모두 이 ‘의(義)’ 가 필요하다. 유학(儒學)은 ‘의는 실천적 개념’이라고 가르친다. 논어(論語)는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로움에 밝다’고 했다. 의는 곧 실천이다. 추수감사절 터키 기금 모금에 참여한 사람들, 연말 이웃돕기 행사에 액수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수많은 기부자와 자원봉사자들, 이들이 모두 의인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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