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 - 고요 속의 기적

2022-11-22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크게 작게
나는 소학교 시절 글짓기 대회에 나갔던 일이 있다. 장소는 옛 절간이 있는 산골짝이었다. 글의 제목을 찾기 위하여 바위에 앉아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눈을 감으니 많은 소리가 들린다. 골짜기서 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 절간 처마에 매달린 풍경소리, 시원한 바람소리, 불경을 읽는 스님의 음성 등 다양한 소리들이 들려 온다.

고요는 깨달음을 준다. 주변도 시끄럽고 내 마음도 고요하지 못하면 깨달음의 기회는 박탈된다. 깨달음과 신성한 분위기를 위하여 예배시간에는 묵상 순서가 있고, 스님들은 좌선을 하며, 문학가들은 조용히 눈을 감고 사색에 잠기고, 어떤 이는 낚시를 드리우고 수면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긴다.

5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한국의 국호는 조선이었다. 조선(朝鮮)이란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뜻이다. 본래 한국인은 고요한 아침처럼 차분하고 조용조용 말을 하고 성격이 급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많이 변했다. 말소리가 시끄러워지고 성격이 급하고 서툴고 조급하다. 이제 한국인은 속도 낮추기(slow down)가 필요하다. 지금은 빠른 성장, 빠른 완성, 빠른 달성이 목표였던 고속도로 건설 시대가 아니다.


무엇을 이루기 위하여 살지 말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뛰는 사람보다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만의 철학자 송천성은 중국 한국 일본의 고전문학을 비교 연구하고 그 공통점을 고요함의 추구로 보았다.

일본의 역사소설가 엔도 슈사꾸의 명작 ‘후미에’가 있다. 옛날 일본이 천주교를 서양종교로 배척할 때 수많은 천주교도들을 죽였다. 죽이는 방법으로 후미에를 만들었다. 예수의 상이 조각된 나무판이다. 그것을 밟으면 살려주고 안 밟으면 죽이는 방법이다. 생사를 가르는 시험이 있는 전날밤 신도들은 발을 피가 나도록 씻으며 “예수님 용서하여 주셔요 내일은 내가 살기 위하여 당신을 밟겠습니다.”하고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눈물도 안나는 고요 속에 보내는 밤이었다.

한국에서도 조선 말기 3대에 걸친 천주교 박해가 있었고 수많은 신도들이 처형되었다. 초대 신부 김대건을 포함한 신도들이 현재의 제3 한강교 자리에서 처형되었다. 한국의 천주교와 기독교가 왕성한 것은 고요하게 죽어간 그들 순교자들의 피 덕분인 것이다.
나는 심야에 집필한다.

집필은 많이 생각해야 가능하므로 심야가 좋다. 잡념을 없애고 무엇에 몰두하려면 고요가 절대 필요하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묵염 묵상 묵도 등이 강조된다. 한국 기독교에는 부흥회라는 것이 있다. 대개의 교회가 일 년에 한 두 번씩 가진다. 부흥회에서 흥분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를 만들고 은혜받는다고 생각한다. 금식기도라는 것도 있다. 금식의 이유는 잡된 생각을 하지 않고 정신적인 고요를 가지기 위해서이다.

예수는 인류 구원을 위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30일 동안 홀로 한적한 광야에 나갔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고요한 광야에 나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고요 속에 묻히는 것이 최선의 준비이다.

나는 설득하려는 설교보다 생각게 하는 설교를 주장한다. 이래라 저래야한다 하고 강조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생각을 자아내고 스스로 돌이켜 보게 하고 자각심을 유발시키는 설교가 효과적이다. 스스로 깨달아야 행동화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 국회가 시끄럽다는 소문이 오래 전부터 나 있다. 떠들어서 입법 진행이 잘 되겠는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