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누가, 이 청춘을 위로하랴

2022-11-04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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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실물센터에 진열된 신발들 사진을 보았다. 구겨지고 끈이 반쯤 풀린 운동화, 흙이 묻은 남자구두와 단화, 모양이 어그러진 부츠 등등, 꼬질꼬질 때와 먼지가 묻은 이 신발들은 참사 당시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신발들은 임자가 없다. 주인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넘어지고 부딪치고 포개지고 밟혀진 채 질식으로 심정지가 온 이들은 무려 156명, 온몸에 피멍이 든 부상자는 172명이라 한다. 사고가 난 세계음식거리는 물론 이태원 역 근처에서 수집된 물건들은 신발 256켤레, 짝 잃은 신발이 66개, 그 외 가방과 옷, 전자제품 등 희생자들이 마지막으로 신고 입고 지녔던 물건들의 무게가 1.5톤 규모라 한다.

이 신발의 주인들은 3년 만에 열리는 핼로윈 축제에 얼마나 기대 하며 이태원으로 나왔을까. 이날 밤 신발도 벗겨진 채 자신이 압사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벗어놓은 신발들을/ 다뉴브강 물결이 신었다 벗었다 하는 것은/ 걸음의 의지와는 무관하지...오랫동안 주인을 신지못한 신발들은/ 햇빛 아래서도 스폰지 같은 어둠을 신고/ 브론즈가 되어간다/ 걸음들이 맨발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걸어도 닿지 않는/ 바닥들을 견디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장요원 시)

헝거리의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앞의 도나(다뉴브강) 강변 한쪽에 주인 잃은 수많은 신발들이 브론즈로 만들어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유대인이 다수 거주했던 헝가리, 1944~45년 나치는 유대인들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명령, 맨발로 강가에 도열시켰다. 그리고 등뒤에서 총을 난사해 바로 강으로 빠트린 학살을 저질렀다. 흣날, 조각가 귈라 파우가 60켤레의 신발 조형물을 만들어 전시 중인 홀로코스트 현장이다.

참사 희생자들의 신발을 보면서 부다페스트 강변의 신발이 떠올랐다. 그런데 용산구 다목적실내체육관에 놓인 신발의 주인들은 전쟁으로 인한 폭격이나 화생방 무기가 아니고 건물이 무너진 것도, 화재가 원인인 것도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도심 한복판 좁은 골목길을 지나다가 올라오고 내려오는 사람들 간에 서로 엉켜서 죽었다. 길을 걸어가다가 죽었다는 것이 어처구니없고 허망하고 비극적이다.

희생자 대부분이 20대 청춘인데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삶, 이들의 장래희망과 꿈들은 어디로 갔는가, 이들의 원통함을 어떻게 달래주어야 하는가. 사건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부상자, 유가족, 구조인력,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본 국민들의 상실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및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또한 한국이 좋아서 유학 오고 관광 온 외국인 사망자들은 어찌 위로할 것인가. 미국 2명, 이란 5명, 중국 4명, 러시아 4명, 일본 2명, 프랑스, 호주,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베트남, 태국, 카자흐스탄, 우즈벡, 스리랑카 각 1명으로 26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도 다수다.

이번 이태원 참사로 수십년동안 쌓아올린 한국의 국격이 순간에 떨어지게 생겼다. K팝, K드라마, K영화, K뷰티, K푸드 등등 전 세계인이 한국의 대중문화를 주목하고 즐기게 되었는데 이번 참사로 ‘치안부재의 나라, 안전불모지대’란 인식을 주고 있다.


IT강국이자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전형적인 후진국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지 알 수가 없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간 것이다. 무조건 빨리, 빨리만 외치다가 성수대교가 떨어지고 삼풍백화점이 주저앉고 대구 지하철 화재에, 세월호 비극 등의 사고가 생겼다.

이번에 참사가 난, 길이 40미터, 폭 3.2미터의 좁은 비탈길을 추모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추모객만 한 줄로 들어가 희생자를 기리고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켜야 한다.

앞으로 크리스마스, 신년맞이행사, 연예인 공연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는 계속 있다. 국민이 있어야 나라도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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