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 ‘간송 전형필’을 쓴 이충렬 작가를 초청하며 이어지는 인연

2022-10-17 (월) 노려/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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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이민의 삶 속에서도 글쓰기를 놓지 않고 결국은 글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 작가 이충렬 씨를 문학강사로 초대를 하며, 왠지 모르게 이어지는 인연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얘, 황 할머니가 간송 집안 사람이더구나.”
미국에 잠깐 오셨던 친정 어머니로부터 황영자 권사님이 간송 미술관 전형필 씨의 조카라는 사실을 들었다. 교회 사교시간에 할머니끼리 앉았을 때 같은 황씨여서 더 친근히 대화를 하다가 그 말이 나왔던 모양이다.

권사님이 동양화를 그리신다는 건 알았어도, 간송 전형필씨 인척이신 줄은 몰랐다. 그 때 어머니가 간송 미술관에 대해 열심히 말씀하셨지만 흘려 들었다.


한국전쟁 전 친정어머니는 성북동 지금은 길상사가 된 한옥에 사셨기 때문에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을 잘 알고 계셨을까. 나는 개인미술관이라는 정도밖에 아는 바가 없었고 솔직히 별 관심도 없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친하게 지내는 지인으로부터, 애리조나에 사는 선배님이 쓰셨다며 ‘간송 전형필’이라는 책을 받았다. ‘간송’이라는 말에 친정 어머니가 생각 났고,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며느리에 의해 교회를 다니시던 황할머니 생각이 났다.

호기심으로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페이지마다 펼쳐지는 전형필이라는 한 인물 속에 빠져들어 한 세대를 살아낸 기분으로 끝 페이지를 닫았다. 과장되거나 드라마틱한 표현이 없는데도 커다랗게 다가오는 한 인물에 감탄을 했고, 그 인물을 그려낸 작가에게도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후 어느 해인가 한국에 갔을 때 마침 동대문시장 자리에 들어선 거대한 문화공간에서 ‘간송 미술관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입구의 벽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한복을 입고 신사모를 쓴 전형필 씨의 모습이 아는 사람을 만나듯 반가왔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소장하게 된 경위를 마치 서스팬스 영화를 보듯 읽어냈던 미술품들이 보물처럼 눈에 들어왔다.

황 할머니도 내 친정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 인연이 또 다시 이어졌다. 올해 ‘미동부한인문인협회’의 19번 째의 회장직을 맡게 되자, 바로 그 지인이 제안을 해왔다.
“내 선배님을 강사로 한번 초대해보면 어때요?” 나의 대답은 당연히 “너무 좋지요.”였으며, 드디어 10월 24일에 문학강연을 열게 된 것이다.

친정어머니의 성북동 시대가 미국 땅의 간송 집안의 황 권사님으로 이어졌다가 이제 간송을 쓴 작가를 만나보게 된 것은 시공간을 초월한 인연이라고 여기고 싶다. 애리조나의 가게 뒷방에 앉아 쉬지 않고 글을 써내며, 이민문학이라는 굴레를 벗어버린 이민자 문학인을 만난다는 것이 큰 의미로 다가 온다.

미국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이민의 고생과 설음에 빠져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충렬 작가는 미국에서 45년이라는 험하다면 험한 삶을 살았는데, 오히려 한국에서는 거의 전무한 ‘전기문학’이라는 장르를 한국에 열고 단단한 터를 닦고 있다.

한국 작가들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화가 김홍도, 동화작가 권정생, 미술평론가 최순우, 법학자 백충현 같은 인물을 썼고, 신부 이태석, 김수환 추기경 등 한국 가톨릭의 큰 이름들을 계속 써온 이 작가는 올 여름엔 ‘김대건, 조선의 첫 사제’를 발표했다.

가톨릭 신자인 이충렬 작가에게 이번 초청 기간 중에 퀸즈 성당에서의 신앙강의도 마련해드린 것이 생각할 수록 기쁘다. 그리고 이충렬 작가에게 “이웃에 전형필씨를 외삼촌이라고 부르던 분이 사셨었어요” 라고 얘기할 생각에 미리 감회에 잠긴다.

<노려/미동부한인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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