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만만디 윤석열

2022-10-05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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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중국인을 두고 흔히‘만만디(慢慢)’ 하다고 한다. 만만디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천천히 혹은 느릿 느릿을 의미하며, 행동이 굼뜨거나 일의 진척이 늦을 경우 표현하는 말이다.

요즘 한국 대통령 윤석열 하면 만만디란 단어가 쉽게 떠오른다. 또 몰랐던 사실은 그는 실상 굼떠 보이는 행동보다 말을 많이 하는, 즉 입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었다. 윤 대통령의 꿈은 원래 법학교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마음먹은 대로 사법고시에 쉽게 붙지를 못해선지, 아니면 교수로서의 실무 경험을 원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법고시 도전 9수라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고 특이한 경우다.


그가 사시 9수 출신이란 점은 집념, 끈기, 성실같은 성향을 확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사시 9수만에 합격한 윤석열은 당시 신림9동의 전설로 통했다고 한다. 윤석열의 만만디는 이뿐이 아니다.

결혼도 거의 포기했던 사람처럼 만만디로 살다가 막차를 탄 것처럼 오십대에 골인했다. 그의 모든 인생철학 키워드가 어쩌면 만만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구설수에 오른 이번 그의 뉴욕 행보가 이해가 되는 것도 같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그가 비속어를 사용했다는 논란이 한국정치판을 회오리 속으로 몰고 있다. 행사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담소를 나누고 내려오는 자리에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을 한 것이 카메라에 잡혔던 것이다.

윤석열이 만만디만 아니었다면 귀국 전에 비속어 논란을 하루라도 일찍 수습하지 않았을까. 이 ‘비속어 발언’을 보다 과학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잡음 제거 영상’까지 나왔으나 MBC방송이 보도한 ‘이 XX들이’와 미 대통령 ‘바이든’의 이름이 실제로 들렸는지는 명확히 판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 비속어가 설령 쓰였다고 해도 크게 놀랄 것도 없는 현대사회다. 그렇게 고상한 사람들이 정치인이 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쉽게 해명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을 만만디로 키워 한국의 모든 국정이 쓸데없는 사건으로 마비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의 이 비속어를 보도한 MBC는 검 경찰에 고발당했고, 이를 두고 대통령 공격거리를 찾고 있던 야당이 얼씨구나 하고 덥썩 물었다는 것이 유감일 뿐이다.
대통령이라면 좀 더 진중하고 무게있는 발언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불어민주당 대표인 이재명이 개인적인 공간에서 형수를 능멸하는 말을 전국민이 알게 되어 들썩거리는 판에 공개적인 국제행사에서 그런 말을 내뱉었으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빨리빨리’ 문화에서 평생을 살아온 한국인들이 윤석열을 대통령 만든 것은 아마도 전임대통령이나 전 정권을 어서 빨리 심판해 달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런데 당선된 지 반년이 되어가도 너무 평온해만 보이니 지지율의 추락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실제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긍정적 평가율이 취임 후 가장 낮은 20%대로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그는 사실 술을 좋아하고 말을 잘하다 보니 주변엔 사람들이 늘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신림동 고시천에서는 낙방한 후배들과 술 마시면서 격려해주고 모르는 노하우는 가르쳐주면서 많은 후배들의 롤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가 아직도 대통령에 취임한지 반년이 안 되었다고 해서 예전처럼 속편한 언행을 계속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는 정말 뼛속까지 만만디일까. 그런 상태로는 빨리 빨리 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한국 국민들에게 큰 코 다칠 수 있다.

대통령 감옥에 보내기를 거의 취미정도로 생각하는 나라에서 임기 1년차 허니문이란 어쩌면 사치일 수도 있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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