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환율의 기억

2022-09-21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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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인들을 마구 웃기고 울리는 것이 있다. 바로 원/달러 고환율이다. 원달러 환율은 13년 5개월만에 1390원대를 돌파하면서 1400원대 진입이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1300원 시대는 2008년 리먼 사태의 후유증을 겪고 난 다음해인 2009년 7월13일(1315원)이 마지막이었다. 그때도 경기 침체는 지금처럼 극심했다. 그래도 1997년말 IMF 아시아 외환 위기의 파장이 더 심했다. 이런 가공할만한 환율 폭탄이 20여년만에 또 다시 경제를 강타할 것 같은 분위기다.

1997년 4월 시작된 동남아 외환위기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로 폭넓게 퍼져나갔다. 마치 코로나 사태로 전세계 경제 침체가 확산된 것처럼....


IMF가 터진 후 환율은 불과 몇개월 사이 달러당 800원대였던 것이 2배가 넘게 올라버렸다. 원화 환율의 하루 변동 폭이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다 12월23일 마침내 달러당 1995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달러를 살 때 적용되는 환율은 2,067원까지 올라 실제로 달러 가치는 2,000원을 넘었었다.

그 시절 교포들이 한국에 가면 황제 대접을 받았다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들도 많았다. 그런데 당시 한국 정부에서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다시 원화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환율이 연일 폭등하고 있다. 지금과 같이 그때도 한국 경기는 호황으로 느껴졌지만 위기 조짐은 한해 전부터 보였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위기관리 능력의 한계를 보였다. 그러다가 그해 11월5일, 블룸버그 통신이 "한국 가용 외환 보유고 20억달러"라는 보도를 했고, 몇주뒤 캉드쉬 IMF 총재가 극비 방한했다는 소식이 터져 나왔다. 1997년 11월21일 한국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 지원을 공식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25년이 흐른 지금,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고 한다. 마치 나라를 뒤흔들었던 외환위기 때와 너무도 흡사해 걱정스럽다.
외환위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금 모으기 운동이다. 사람들이 줄지어 금덩이를 정부에 기부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한국은 127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통계가 있다.

물론 한국 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했고 2001년 8월에는 IMF로부터의 구제금융 자금을 모두 상환하고 IMF 관리체제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과거 환율이 1,300원 이상으로 올랐던 시기는 단지 두 차례, IMF외환위기와 서브프라임 리먼 금융위기였다. 이번에 또 1,300원이 깨진 것은 과거와 같은 경제 위기의 징후가 아닐까.

환율이 치솟으면 모든 한국인들이 앞다투어 외화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줄이는 등 갖가지 달러 절약, 허리 졸라매기가 유행할 것이다.
환율은 늘 일정한 폭 안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마치 널뛰기를 하듯 출렁거리는 것은 문제다. 미국 등 외국 물품을 수입하는 한국 기업들은 환율 인상으로 막대한 손실을 겪게 되고 자연히 경기침체를 겪을 수밖에 없다

환율이 1400원 돌파를 앞두고 매일 최고치 갱신을 거듭하니 해외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한국 회사들은 원자재값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유학생들은 말 그대로 거의 패닉 상태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미국발 긴축 공포로 1997년 외환위기 전 상황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연출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때처럼 유학생들은 생활고를 겪고 있고 학업을 하차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앞으로 달러 강세가 계속된다면 유학생이나 주재원을 주고객으로 하는 한인타운도 큰 걱정이다.
미연방준비위원회가 계속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러다간 무슨 경제난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여하튼 지금은 매일 매일 경제 소식에 귀를 바짝 기울이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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