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때로 ‘국뽕’이 좋다

2022-09-09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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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훈의 장편소설 ‘하얼빈’이 뉴욕 한국서점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 바로 가서 구입해 단숨에 읽었다.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15분, 중국 하얼빈역에서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을 쏜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 일주일동안의 이야기이다. 이토는 일본 제국주의적 침략과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주도한 인물이다. 책 속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토는 조선 사대부들의 자결이 아닌 무지렁이 백성들의 저항에 경악했다. 왕권이 이미 무너지고 사대부들이 국권을 남겼는데도, 조선의 면면촌촌에서 백성들은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서울의 통감부 집무실에서 이토는 날마다 주둔군 사령부에서 보내오는 폭민 대처 상황 보고서를 읽었다. 정보참모는 여러 지역의 소요 사태를 열거하고 문서의 말미에 상황개요라는 항목으로 ‘일파(一派)가 흔들리니 만파(萬波) 가 일어선다/ 산촌에서 고함치면 어촌에서 화답한다/ ’라고 써놓았다. ”

이렇게 백성 모두 식민 치하에서도 자주독립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1945년 8월15일 해방을 가져올 수 있었다. 안중근은 법정에서 말한다.
“나의 목적은 동양평화이다. 무릇 세상에는 작은 벌레라도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 된 자는 이것을 위해서 진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토는 통감으로 한국에 온 이래 태황제를 폐위시키고 현 황제를 자기 부하처럼 부렸다. 또 타국민을 죽이는 것을 영웅으로 알고 한국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십수만 한국 인민을 파리 죽이듯이 죽였다. 이토, 이 자는 영웅이 아니다. 기회를 기다려 없애버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하얼빈에서 기회를 얻었으므로 죽였다.”
일본 법정은 안중근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1910년 3월26일 오전10시 처형당했다. 안중근의 나이 서른 한 살이었다.

한편, 한달 전에는 퀸즈 베이사이드 극장에서 상영되는 충무공 이순신 영화 2부작 ‘한산: 용의 출현’(감독 김한민)을 보러갔다. 2014년 개봉된 1부 ‘명량’ 도 이곳에서 보았는데 당시 명량은 1,760만명이라는 한국내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다.

진군 중인 왜군을 상대로 필사의 전략과 패기로 뭉친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들, 왜장 와키자카 부하들이 거북선 설계도를 훔쳐가자 위기를 맞는다. 그러자 거북선 없이 학익진(학의 날개) 전법으로 바다 위의 성을 만든다. 1592년 7월8일 한산도 앞바다에 펼쳐진 학익진 전법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을 막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한산”은 사극으로선 이례적으로 미국내에서 한국과 동시개봉했다.

이러한 영화들을 흔히 ‘국뽕 영화 ’라고 부른다.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다. 2010년 중반에 나타난 신조어로 맹목적으로 자국을 찬양하는 것으로 요즘은 신문기사에도 등장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사용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적 이슈인 손흥민, BTS 등 스포츠와 가수들에 대한 자부심을 말할 때 등장하기도 한다.

그동안 나온 한국영화로는 ‘태극기 바람에 휘날리고’, ‘인천상륙작전’, ‘군함도’, ‘봉오동 전투’, ‘명량’ ‘국제시장’ 같은 영화들을 이르기도 한다. 그 중 애국반공용이라는 비난을 받은 영화도 있지만 부모세대의 희생과 애국심, 한 인간의 고뇌 이러한 것들이 감동을 불러일으켜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대다수다.

미주한인들은 이런 영화를 챙겨서 보러간다. 세상이 복잡하고 앞날이 불투명할수록 과거에 대한 그리움, 하나가 된 마음, 애국심, 이런 것에 빠져들고 싶은 것이다. 든든한 내 편을 확인하고 자긍심을 갖는 데는 시민권 소지 여부와 상관없다.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들과 영화를 함께 보러가기도 한다. 한국의 역사공부와 정체성 고취에는 최고인 것이다.

더구나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마음이 피폐해진 사람들, 소속감 없이 마음이 헛헛할 때, 뭔가 의지가 필요한 이 시기에 가슴에 훅 들어오는 영화 한편이 위로가 된다. 때로 ‘국뽕’이 좋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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